(워싱턴=연합뉴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2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만나 대북 문제 등을 협의했다. 2021.10.13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공)
(워싱턴=연합뉴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2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만나 대북 문제 등을 협의했다. 2021.10.13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공)

워싱턴서 한미안보실장 협의

정부 관계자 “美이해 깊어져”

미측, 종전선언 언급은 없어

김정은 美불신에는 즉각 화답

노규덕 “한반도 평화에 러 중요”

이인영도 유럽서 종전선언 홍보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임기 막바지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에 대한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사국인 미국은 물론 러시아 유럽까지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지지를 요청하는 등 전방위 외교에 나선 모습이다.

종전선언을 고리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셈인데, 북미 간 대화 재개 조건에 대한 여전한 이견 속 중재자를 넘어 남북‧북미 관계를 주도하는 상황이라 원하는 성과를 얻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서훈 “종전선언 관련 韓입장 설명”

청와대 국가안보실에 따르면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한미 안보실장 협의를 갖고 한반도 정세 등에 관해 논의했다.

서 실장은 협의 직후 특파원들과 만나 “미국은 남북 대화 관여와 협력 기조를 재확인했고, 한반도 안보 위협 감소 및 경제 안정, 비핵화를 위해선 대북 외교·대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특히 서 실장은 종전선언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설명했고, 한미 양국이 긴밀히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우리 대통령의 구상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면서 “우리 입장에 대한 미국의 이해가 깊어졌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가 종전선언에 대한 설득 작업을 강하게 펼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인데, 일각에선 벌써부터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감도 감지되는 분위기다. 미측이 화답한다면 종전선언이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대북적대시정책 철회’에 대한 정치적 답변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1일(한국시간) 노동당 창건일 기념하는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 개막식 기념 연설에서 미국을 겨냥해 대북적대시정책 철회를 재차 거론하며 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또 “미국이 최근 우리 국가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신호를 빈번히 발신하고 있지만, 적대적이지 않다고 믿을 수 있는 행동적 근거는 하나도 없다”고도 했다.

이에 이날도 미 국무부와 국방부가 “북한에 대한 적대시정책이 없다”며 조건없는 대화를 연이어 촉구했는데, 그 보다는 종전선언이 북미 간 대화를 견인할 수 있는 실질적 조치가 될 수 있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서울 그랜드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제15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제공: 청와대) ⓒ천지일보 2021.10.5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서울 그랜드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제15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제공: 청와대) ⓒ천지일보 2021.10.5

◆美 “대북적대시정책 없다”만 거듭 강조

하지만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과 관련해 미측은 이번에도 진전된 입장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도 협의 이후 자료를 냈는데, “양측이 역내 안보 상황에 대해 논의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진지하고 지속적인 외교에 임할 것을 북한에 촉구했다”고 밝혔지만 종전선언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NSC는 “설리번 보좌관은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자제해 줄 필요성을 언급했고, 남북 대화와 협력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재확인했다”고만 했다.

미측의 이 같은 반응은 ‘북한에 적대적 의도 없다’ ‘외교에 관여할 준비돼 있다’는 등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피력해 온 기존 입장의 연장선이라 조 바이든 행정부가 종전선언에 시큰둥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존재하지만 이를 위한 한미 간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국의 외교 기조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급격히 선회하고 있는데다 미중 갈등 심화 속 양측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주고받기’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 보이는 상황도 이 같은 해석에 의미를 두는 이유다.

북미 간 기류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대화 재개 조건에 대한 입장차 속 김정은 위원장은 국방전람회 연설에서 여전히 대미 불신을 드러내면서도 “자신들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최대 주적’이라는 등 그간 미국을 향했던 북한의 원색적인 비난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되는 등 남북관계 개선 조짐도 같은 맥락이다.

설리번 안보보좌관도 북측의 불만에 곧장 ‘북한에 대한 적대시정책이 없다’는 “미측의 진정성을 재확인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는데, 미국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사령탑이 ‘진정성’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성의 있게 다가가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 같은 기조가 향후 북미관계 진전의 계기로 작동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영종도=연합뉴스) 1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전날 도쿄 일본 외무성에서 열린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 참석을 마치고 귀국하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1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전날 도쿄 일본 외무성에서 열린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 참석을 마치고 귀국하고 있다.

◆노규덕, 한·러 북핵협의차 출국

이런 가운데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13일(한국시간)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차관과의 북핵 협의를 위해 러시아로 출국했다. 노 본부장과 모르굴로프 차관은 지난 8월말 서울에서 만난 지 약 50일만이다.

노 본부장은 이날 출국 전 인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한·러 북핵수석대표 협의 의제에 대해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의 주요 국가로 북한 문제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면서 “한‧러 간 협력 내용을 점검하고 종전선언, 남북관계 개선, 북한 동향평가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노 본부장은 러시아에 종전선언에 대한 구상을 설명하고 지지를 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뒤 외교부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 차례로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노 본부장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멈춰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북한 문제는 현상유지라는 개념이 없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를 위해서는 러시아 역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지난달 30일 독일, 벨기에, 스웨덴 등 유럽 순방길에 올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종전선언에 대한 지지, 인도주의 협력과 대화 재개를 위한 여건 조성 등 상호 협력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과는 다른 일종의 정치적, 상징적 선언이다. 종전선언은 비핵화 논의의 입구이고 비핵화 문을 여는 출발이라는 게 정부의 시각인데, 이처럼 발빠른 외교와 함께 국제사회의 관심도 커져가는 분위기인 만큼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구상에도 힘이 실릴지 이목이 집중된다. 

통일부는 이인영 장관이 12일 주한 유럽연합(EU) 대사 모임 주최 '고성 평화의 길 걷기' 행사에 참석하고 남북 과계와 대북 정책 관련 정책 설명회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2021.10.12 (출처: 뉴시스)
통일부는 이인영 장관이 12일 주한 유럽연합(EU) 대사 모임 주최 '고성 평화의 길 걷기' 행사에 참석하고 남북 과계와 대북 정책 관련 정책 설명회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2021.10.12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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