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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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은 북한 노동당이 창당된 지 76주년이 되는 날이다. 분명한 건 북한 노동당은 일개 정당이 아닌 서울의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즉 지역 조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해방 직후 한반도의 정치정세는 대단히 복잡했다. 특히 북한의 김일성은 8.15 광복이 됐지만, 아직 귀국하지 못하고 소련 블라디보스톡 근교 브야츠크 밀영에 그대로 주둔하면서 스탈린의 귀국 명령만 기다리고 있는 한심한 처지였다. 스탈린은 해방 1개월이 지난 1945년 9월 19일 드디어 김일성 일행의 귀국을 명령했고 김일성은 오진우와 박성철, 백학림 등 부하 50여명과 함께 소련 군함 ‘브가쵸브호’를 타고 몰래 원산으로 귀국했다.

곧 열차로 평양에 올라온 김일성에게 주어진 첫 직책은 평양시 경무 사령부 부책임자였다. 얼마 후 조만식 선생이 반탁으로 돌아서면서 소련 군정사령부는 김일성을 북한의 정치 지도자로 부각시키는 작업을 시작했고 이어 북한에도 공산당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서울에 박헌영을 영도자로 하는 조선공산당이 조직돼 있어 북한 지역에서의 공산당 조직 창설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였다. 따라서 북한 지역에서 당을 창건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오늘 북한 노동당이 말하는 김일성에 의한 조선공산당의 독자적 창건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원래 공산주의 국가에서 당은 ‘1국 1당 주의’ 즉 한 나라 안에는 하나의 당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따라서 서울에 이미 당 중앙이 있는 조선공산당이 평양에 등장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련 군정사령부 정치 사령관 로마넨코 소장과 김일성은 평양에 공산당을 만들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아닌 게 아니라 1국 1당 주의 원칙이 이들의 야망을 가로막았다. 하여 로마넨코 소장과 김일성은 개성에서 박헌영과 몇 차례 만나 애걸복걸하였지만, 그 당시 분단국가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에서 박헌영 공산당 총비서가 “좋소, 평양에 공산당을 만드시오”라고 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몇 개월 동안의 줄다리기 끝에 하나의 타협점을 찾았는바, 북한 지역에 당은 만들 수 없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당의 지방조직은 만들 수 있다는 타협점을 찾아낸 것이다.

즉 서울에는 공산당 중앙이 있고, 평양에 북한 지역을 관리하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만들고 김일성이 책임자가 되며 김일성은 대부분 서울의 중앙당에 내려와 일하라는 것이었다. 김일성과 로마넨코 정치 사령관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박헌영 총비서의 지시를 받아들여 1945년 10월 10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창설하게 된다. 북한은 김일성이 노동당을 만든 지도자로 칭송하고 있지만, 이것은 역사의 진실이 아니다.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창설의 총감독은 소련군 정치 사령관 로마넨코 소장이었고 주인공은 김용범 초대 책임 비서, 김일성과 최용건, 김책 등은 조연급이었다.

김용범은 북조선분국의 초대 책임 비서로 선출되었는데 그는 박정애 여사의 남편으로 소련 노동자 공산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에 파견돼 지하공작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해방과 함께 출옥한 유명한 독립운동가였다.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그 뒤 공산당 북조선조직위원회로 개명된 뒤 다시 1946년 8월 김두봉의 조선 신민당과 합당하면서 북조선로동당으로 세상에 거듭 태어나게 되는바, 그러니까 이때부터 북로당과 남로당이란 정당이 세상에 출현한 것이다. 북한 노동당의 일탈은 1966년 제2차 당 대표자회의를 계기로 위원장제를 총비서제로 바꾸면서 김일성의 개인숭배, 즉 유일사상체계를 내온 순간이 북한 노동당의 타락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원래 정당이란 것이 각계각층 근로인민대중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치조직으로 토론과 갈등이 불가피한데 김일성의 교시와 사상을 절대화한다는 것이 무슨 정당이란 말인가. 이래서 학자들은 그때부터 북한의 정치체제를 종교적인 ‘신정체제’라고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북한 노동당은 1973년 2월 김정일로 권력을 세습하는 정치국 결정을 내리면서 타락의 거침없는 길을 내달려 오늘 3대 세습까지 안착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에 미래는 없다. 세습을 포기하고 중국 공산당처럼 환골탈태의 길을 걷지 않는 한 노동은 곧 깃발을 내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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