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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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는 1988년 평양시 선교구역에 지어진 유일한 성당인 장충성당이 있고, 주일이면 70∼80명, 큰 축일 때는 약 200명의 천주교 신자가 모여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에 이 가을에 교황 방북이 성사된다면 이곳에서 미사를 접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방북을 공식 제안하고, 교황도 ‘초청이 오면 기꺼이 가겠다’고 밝히면서 북한이 이번엔 교황에게 정식으로 초청장을 보낼지 관심이다. 교황의 평양 방문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교황 방북 문제는 2018년 가을에도 화두로 떠오른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교황 방북 초청을 제안하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교황이 오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답변했다. 문 대통령은 그 다음 달 교황청을 방문해 김 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전달했고 교황은 이번처럼 “북한의 공식 초청장이 오면 갈 수 있다”고 화답했지만, 북한의 초청장은 지금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남북, 북미 대화가 크게 위축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의 교황청 방문을 통해 3년 만에 다시 주목받게 된 교황의 방북 여부는 이번에도 일차적으론 북한의 태도에 달려있다.

교황청의 외교 프로토콜 상 교황이 외국을 방문하려면 반드시 그 나라 정부의 초청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의 교황 방북에 대한 입장은 2018년 9월 문 대통령을 통해 전달된 “교황이 오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가 사실상 유일하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교황 방북 초청 제안을 수락했다고 청와대가 전한 적이 있지만, 이때도 간접적 의사표명이다. 북한이 담화나 언론 등을 통해 직접 입장을 밝힌 적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김정은 총비서 결심 없이 북한의 어느 누구도 교황 방문을 거론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북한의 주체사상 통치이데올로는 이념의 다원화에 가장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이 정상 국가 지도자로서 이미지에 신경을 써왔다는 점에서 교황 방북에 긍정적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 등으로 깊어진 경제적·외교적 고립 상황을 타개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번에도 초청장을 보내지 않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3년 전 첫 북미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이 이어지면서 북한이 어느 때보다 국제사회에서 활발하게 움직일 때도 초청 여부에 대해 입을 다물었는데, 남북·북미 대화가 모두 끊긴 현 상황에서 초청장을 보낼지 낙관하긴 힘들다. 특히 코로나19의 지속 상황도 교황은 물론이고 북한에 큰 부담이다. 물론 최근 북한이 일부 중국과의 해상 통로를 여는 등 국경을 다시 개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새 평양 주재 중국대사가 내정된 지 한참 지났지만 부임도 못 할 정도로 코로나19에 대한 경계감이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수행인원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교황의 방북을 추진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한편 북한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며 부정적으로 보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고 천주교 신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의 북한의 최고대학 김일성종합대학에는 종교학과가 있다. 적어도 22년 전에 벌써 종교학과를 설치한 북한이지만 북한은 여전히 가장 종교를 탄압하는 국가의 상위 랭킹에 올라있다. 교황의 평양 방문은 그래서 간단해 보이질 않는다. 북한은 오늘 식량사정을 비롯해 여러 가지 제재 속에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른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란 것까지 만들어 가며 외부사조 차단에 절치부심하고 있지 않는가? 만약에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면 서로 주고받을 선물이 필수다. 북한은 그에게 보여주어야 할 뭔가 전시품이 필요한데 교황청은 분명 성당설치를 요구할 것이다. 현재 하나의 성당에 대해 교황청은 적어도 평양과 각 도에 1개씩의 성당설치를 요구할 수 있다. 김정은 체제가 허약한 체제단속 가운데 교황청의 이와 같은 혁명적 요구를 수락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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