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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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학생이 밤에 사라진다.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남부러울 게 없다.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그 전날 마지막으로 만났던 다른 여학생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 여학생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하지만 그 여학생은 별일이 없었음을 항변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심지어 같은 반 일부 학생들은 집으로 찾아와 사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어디 살아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싶었지만 사라진 여학생은 안타깝게도 인근 강에서 주검으로 떠오른다. 전날 같이 마지막으로 만났던 여학생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강해진다. 그 여학생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서 마지막 결단을 한다. 장례식장 화장실에서 독극물을 입에 들이붓는다. 병원에 실려 간 끝에 입과 식도는 상해, 음식을 못 먹는 것은 물론 말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했다.

이런 행동 뒤에 시선은 약간 달라지긴 하지만 여전히 의심은 가시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집안에서 여학생의 유서가 발견되고, 그 유서 안에서 고마운 사람의 이름이 발견된다. 결국 여학생의 죽음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라 생각한 또 다른 여학생 영희(전여빈)는 가해자가 아니라 경민의 소중한 친구였다. 오히려 경민이 지적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 내용은 영화 ‘죄많은 소녀’의 스토리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 아니었다.

현실에서는 죄많은 소년이 탄생했다. 최근 선처를 호소하는 메일이 한 변호인에게 쇄도하고 있다. 바로 한강 공원 사건을 담당한 변호인이다. 선처를 호소한 이들은 모두 친구가 범인이라고 악플을 달았던 이들이었다. 수만명에 이르는 사람을 모두 고소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뒤에 벌어진 일이다. 한강 공원 사건에서 친구는 범죄자 즉, 친구를 죽인 가해자로 의심되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과 증거를 살펴보았을 때 그러한 처음의 의심과 멀어지고 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동조했던 친구를 범인으로 몰아간 유튜버들의 방송 내용들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교묘하게 이용해 뭇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제물로 삼아 이익을 취하려는 행태가 한 소년을 죄가 많게 아니, 엄청나게 크게 만들었다. 오히려 죄인으로 몰린 친구가 마지막까지 고민을 들어주고 마음을 위로해 준 절친이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인가.

여기에는 몇 가지 심리 메커니즘이 작동한 점이 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 명문 의대생이 왜 갑자기 처참한 모습으로 떠오른 것인지에 대해 외부 귀인론(external attribution)이 등극했고, 이에 따른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즉, 그 원인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 누군가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인식이 초기에 고착되는 앵커링 현상(Anchoring Effect)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에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과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 현상이 결합됐다.

우리 모두는 존재적 가치를 찾고 싶어 하고 나름대로 더 좋은 세상을 위해 기여하고 싶어 한다. 이런 선한 의지력이 강력한 열정으로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선과 악의 이분법에 따라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를 일정한 방향으로 몰아갈 때 선의의 피해자는 양산될 수 있다. 유튜브 환경은 누구나 언론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이 평평하지 않듯이 유튜브 환경도 공정하지는 않다. 보고 싶은 것만 보도록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비즈니스 모델로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운영자들은 모두 선한 의지를 내걸고 있지만 이제 그 선한 의지는 오히려 악한 의지보다 참혹한 결말을 낳을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유튜브 탓만 하는 것도 외부 귀인론이다. 유튜브가 진실의 창이라는 편향이 왜 생겼을까. 무조건 공권력 불신을 조장하기보다는 옥석을 가리는 저널리즘도 여전히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의 선의지를 불신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 냉소주의가 만연할 수 있다. 이점이 우려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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