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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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전격 폐지됐을 때 전례 없는 일이라 놀라웠다. 설마 방영이 얼마 되지도 않은 드라마가 폐지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송사의 처지에서 가장 약점인 광고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등장할 조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련 기업들이 재빨리 손절을 하고 나섰으니 방송사가 매우 당황했을 법하다.

이는 일본상품 불매운동의 성과가 어느 정도 이어진 결과였는데, 일본상품 불매운동과 다르게 가시적인 성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미풍에 그칠 것으로 보였던 애초의 예상과 달리 여행, 의류, 주류, 자동차 등에 이르기까지 일본 기업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로 불매운동이 이뤄졌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요인은 우선 SNS라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단지 소통의 도구에 그치지 않고 콘텐츠는 물론 일반 쇼핑 소비, 나아가 금융결제도 실시간 거래가 순식간에 이뤄지고 있다. 때문에 단순 여론 형성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효과까지도 가능할 수 있게 됐다. 모바일 세대라고 불릴 수 있는 MZ세대가 강력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유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최근에는 편의점 광고 이미지에 대한 메갈이나 남성 혐오 같은 젠더 이슈에 기업들이 공포감을 가졌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것이 진짜 그렇든 그렇지 않든 간에 기업이 특정 이미지와 관련해서 이른바 좌표가 찍혔기 때문이다.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의 정경을 가장 잘 반영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의 모습이었다. 바람이 불면 누워야 한다.

이런 좌표 찍기는 이제 정치에도 미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개 좌표 찍기는 악한데 이 좌표는 선(?)했다. 지난 4월 서울시장 등 재보선 선거에서 스윙보터(swing voter) 역할을 톡톡하게 MZ 세대가 했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 문제의식을 정치에 반영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연 긴장을 했지만, 선거에만 한정되는 것으로 생각이 됐다.

하지만 그것은 단편적인 사고였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을 앞두고 인터넷 여론을 중심으로 이준석에 쏠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인터넷 여론이 아니라 실제로 이준석을 당 대표로 선출시켰다. 이로써 바람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것으로 탈바꿈됐다. 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젊은 세대는 스윙보터가 아니라 캐스팅 보터라는 점이다. 흔들리는 유권자가 아니라 승리자와 패배자를 만들 수 있는 마지막 티켓을 들고 있는 중요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젊은 세대가 아니라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간주해야 할 때가 됐다.

이미 좌표가 선하게 찍히면 ‘돈쭐 내주기’ 현상에서 증명이 된 바가 있다. 악덕 사업자에게는 불매운동을 벌이지만 착한 사업자에게는 소비 운동을 벌인 결과였다. 하지만 돈쭐 내줌을 당한 이들에게도 부작용이 있었다. 바쁜 시간에 주문이 폭주해 영업을 중지해야 했다.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폐지도 마찬가지였다. 그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던 배우와 스텝들이 일을 잃어 버렸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이 사과를 해야 했다. 방송사가 제작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인 사과도 없이 흐지부지된 좋지 않은 사례였다. 젠더 논란의 광고 이미지 논란 또한 과연 맞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고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했음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더구나 선과 악의 이분법은 자의성이라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특히 모바일 문화는 접근성이 뛰어나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성은 없다. 그것을 수용하는 것은 기존 문화체계이다. 예컨대 기존 정치 문화가 바뀌지 않았는데 과연 젊은 당 대표가 정치 구조와 시스템을 바꿀 수 있을까. 더구나 MZ세대 홀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일본상품 불매운동에서 보여주었듯이 적어도 70‘X세대의 도움과 연계가 없이는 힘들 것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조건 당 대표가 되는 것은 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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