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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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사라진다’라는 말이 현실이 되고 있다. 2021학년도 대학 모집 인원은 55만 5천여명으로 수능 응시인원보다 6만명이 많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 격차는 2024년에는 12만여명으로 증가해 올해보다 두 배로 늘어난다고 한다. 지방에 있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학이 올해 정원대비 충원율이 10~30%까지 미달 돼 그 여파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 시절 불과 20년 후에 출산율이 줄어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이 없어질 걸 예측하지 못하고 대학 설립 기준을 대폭 완화해 최소 요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을 인가해 무늬만 대학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한 가지만 잘하면 모든 국민이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책을 만든 당시 교육부 장관도 한몫했다. 게다가 기술을 배우던 2년제 전문대학마저 4년제 종합대학으로 늘린 여파로 지금 이런 큰 대가를 치르게 됐다. 반대로 마이스터고를 늘리고 고교 졸업 후 4년 경력자와 대졸 신입과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정책을 추진했어야 한다.

80년대 초의 대학진학률은 30%대였지만 현재는 80%가 넘는다. 그때는 공부하고 싶은 사람만 4년제 대학에 진학했고 공부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실업계나 전문대에서 기술을 배웠다. 지금은 누구나 대학을 다니는 고학력 사회가 돼 알바를 하더라도 대학 재학이나 졸업장이 필요한 세상이다. “몇 년생이세요?”가 아닌 “몇 학번이세요?”라는 말이 더 통용되는 세상이니 아무 대학이라도 비싼 학비를 내며 다닌다고 나무랄 수 없는 사회 구조가 문제다. 실무 위주의 2년제 전문대학이 많아 굳이 4년제를 가지 않아도 대학 졸업장을 받을 수 있던 시대가 더 나았다.

고교만 졸업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음에도 너도나도 4년제 대학을 가니 주변에 외국인 노동자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대졸자가 실력으로 취업할 수 있는 기업은 한정돼 있는데 대졸자란 이유로 대기업, 공기업만 취직하려 하니 건설현장, 생산 현장엔 일손이 부족하고 자발적 미취업자인 청년층 증가로 대졸 백수가 넘쳐난다.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면 대학을 안 나와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 외엔 없다.

초중고도 아닌 대학이 의무교육처럼 된 나라로 세계 유일무이한 나라다 보니 환경미화원, 경비원, 파트타임 일에도 대졸자가 몰린다.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지 의무교육처럼 졸업장을 받는 곳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 중 80% 이상이 공부에 소질을 갖고 태어나 대학에 진학하는 게 아니니 대학보다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마이스터고, 전문대학을 늘려야 한다. 비싼 학비를 내고 졸업해도 제대로 된 회사에 취업조차 못 하는 대학은 학생이 교직원을 먹여 살리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교수들이 조를 짜서 잡상인처럼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구걸하듯이 학생을 모집하러 다닌다.

정부는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해 대학구조조정이 연착륙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지역균형 인재 선발 제도를 도입하면 지방대학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을 줄여야 함에도 나주 한전공대, 남원 공공 의대를 설립하면 그 지역 인재를 다 흡수해 호남권 지방대학의 몰락을 가속할 거라는 생각조차 못 한다. 이제라도 대학 간 통폐합과 사이버대학으로 전환, 시대에 뒤떨어진 수요가 없는 학과는 과감히 폐과나 전과를 해야 지방대학의 공멸을 막을 수 있다. 학생 충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대학교수, 교직원 중에 억대 연봉자가 수두룩한 방만한 대학 운영도 큰 문제다. 교수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지금이라도 4년제를 2년제 전문대로 바꾸는 혁신적인 시도를 통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필자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를 양성한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워 운영하던 국립기계공고를 졸업했다. 당시 공고를 졸업한 선배들의 처우가 열악하기 그지없어 독학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동창 절반은 회사에 다니다 재수해 대학에 진학했고 절반은 기업체에 취직했거나 독립해서 사업체를 운영한다. 60살이 된 올해 기준으로 보면 내가 어떻게 열심히 살았느냐가 현재 삶의 질을 결정하지 대학 졸업장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대학이 정답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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