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3년 만에 한파경보가 내려진 7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최미정씨가 마늘장사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7
서울에 3년 만에 한파경보가 내려진 7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최미정씨가 마늘장사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1.7

경동시장 상인들 “추위보다 일 안하고 쉬는게 더 곤혹”

“코로나19로 어려움 겪는 택시기사 남편 돕고자 일해”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살려 한다” 본업에 충실 모습

[천지일보=홍보영 인턴기자] “코로나19로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실직했지만 시장에서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것 같아요.”

올 겨울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강력한 추위가 북극에서부터 날아와 체감온도가 -25도를 기록한 지난 7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 최미정(57, 여)씨는 제대로 된 천막도 없이 파라솔만 쳐놓고 맨몸으로 추위를 견디며 마늘을 까다말고 이같이 말했다.

3년 만에 한파경보가 내려진 서울. 북극발 추위가 몰아닥쳐 최강 한파를 맞았지만 실외에서도 자신의 본업을 충실히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건잎과 마늘 장사를 하고 있던 최씨는 “어떤 일이든 힘들지 않은 일이 없겠지만 일보다도 사람이 더 중요하다”며 “같이 일하고 있는 사장님이 좋은 분이셔서 일하기는 좋다. 날씨가 추워도 일을 해야지 놀면 한없이 나태해져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살려 한다”고 말했다.

최씨 앞에 놓인 온열기는 최씨 쪽이 아닌 마늘쪽 방향으로 열기를 내고 있었다. 게다가 마늘엔 두꺼운 이불이 덮여 있었다. 날씨도 추운데 온열기를 왜 쬐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마늘이 얼 수도 있어서 온열기로 마늘을 쬔다”며 “저는 엉덩이 쪽이 따뜻하게 해둬서 괜찮다”고 말했다.

“여자가 저렇게 힘이 좋으니 고생길이 훤하다. 한나 아빠가 장가 잘 갔어!”

꽁꽁 얼은 동태를 묵직한 칼로 내리치고 손질하던 김애란(63, 여)씨는 옆집 생선가게 사장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40년 전 어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경동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시작해 자식들을 다 키우고 자신에게 장사를 물려줬다고 했다.

김씨는 “(꽁꽁 얼은) 생선을 자르는 게 보기엔 쉬워보일지 몰라도 남자들이 하기도 어렵다”며 “우리 남편도 생선 손질을 맡겨봤었지만 잘하지 못한다. 주위에서 저보고 힘이 세서 지금까지 계속 일을 쉬지 않고 하면서 고생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서울에 3년 만에 한파경보가 내려진 7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생선을 팔고 있는 김애란씨 ⓒ천지일보 2021.1.7
서울에 3년 만에 한파경보가 내려진 7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생선을 팔고 있는 김애란씨 ⓒ천지일보 2021.1.7

노점들은 보온을 위해 파란 천막을 덮어뒀다. 하지만 주인 없는 천막도 허다했다. 야채장사는 추운 날에 야채가 얼어서 장사 나오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하고 그나마 생선 장사만 나오는데 이날은 강추위라 그마저도 안 나왔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었다.

추운날씨와 더불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작년 매출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한 그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장사도 안 되지만 주위 식당에서 오징어를 많이 사가는데 코로나19로 식당이 어렵다보니 이마저도 줄어버려 장사가 더 안 된다”며 “그래도 돈을 많이 벌려고 장사하기보다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쉬지 않고 장사를 하는 이유에 대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던 사람이 쉬려고 하면 그게 더 곤혹”이라며 “밖에서 일하다보니 직업병으로 얼굴에 무언가 생기고 생선을 많이 자르다보니 어깨도 아프다. 하지만 내 일이 습관이 돼 장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생닭사가세요. 오리도 있어요.”

두꺼운 패딩과 모자를 덮어쓰고 장화를 신은 채 흰 목장갑을 끼고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생닭을 팔고 있는 이지영(가명, 여)씨는 “날씨가 추워도 제가 나오지 않으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일 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에 3년 만에 한파경보가 내려진 7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한 상인이 생닭을 팔고 있다. ⓒ천지일보 2021.1.7
서울에 3년 만에 한파경보가 내려진 7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한 상인이 생닭을 팔고 있다. ⓒ천지일보 2021.1.7

그는 “생닭을 판매하는 일을 한지 2개월 밖에 안 되도 이렇게 힘든 데 주위에 상인들은 20~30년 동안 꾸준하게 장사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씨는 “안 하던 일을 하다 보니 몸이 안 좋아졌다. 땀을 좀 내면 좋아질 것 같아 어젯밤에 밖을 많이 걸어 다녔는데 쌀가루가 휘날리듯 눈보라가 쳤다”며 “오늘 아침이 되니 엄청 추워졌다. 그래도 옷을 겹겹이 입고 비닐장갑과 장갑두개를 끼고 장화 안에도 신문지를 넣고 보온하니 괜찮다”고 했다.

어떻게 해서 이 일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남편이 택시 운전을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워 조금이라도 돕고자하는 마음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며 “자녀들도 대학을 졸업했지만 결혼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 이렇게 나와 일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AI(조류독감)로 인해 닭·오리 가격이 많이 올라 장사가 더 안 된다고 하소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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