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6일 오후 강남의 도곡동 타워 팰리스와 구룡마을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천지일보 2021.1.6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6일 오후 강남의 도곡동 타워 팰리스와 구룡마을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천지일보 2021.1.6

고층 아파트와 ‘극명한 대비’

콘크리트 바닥 곳곳에 얼음

난간 없는 하수로 ‘위험요소’

“코로나에 후원이 거의끊겨”

“전염병 무서워 병원 못 가”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이우혁 인턴기자] “연탄 때고 전기장판을 켜면 지낼 만은 한데, 전염병 때문에 후원도 다 끊겨 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이어 영하 10도의 한파까지 밀어닥쳤다. 꺾이지 않은 코로나19 확산세에 ‘엄동설한’으로 이중고를 겪으며 서민들의 마음도 얼어붙는 가운데 지난 4일 서울 강남에 마지막 남은 판자촌인 ‘구룡마을’을 찾아가 봤다.

◆지붕 위엔 방수천이 ‘누덕누덕’

서울역에서 406번 버스로 1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구룡마을 뒤편으로는 왕복 10차선 도로 너머로 고층 아파트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시선을 돌리면 눈앞에는 같은 강남이라는 것이 의심되는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6일 서울 강남의 구룡마을 입구에 설치된 현수막에 '인간답게 살고 싶다. 주거‧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적혀있다. ⓒ천지일보 2021.1.6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6일 서울 강남의 구룡마을 입구에 설치된 현수막에 '인간답게 살고 싶다. 주거‧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적혀있다. ⓒ천지일보 2021.1.6

‘철거민은 개발의 장애물이 아닌 피해자’라고 적힌 붉은 현수막이 긴장감을 자아냈다.

도로에선 잘 보이지 않았지만, 걸어서 3분만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과연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인가’를 의심케 하는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붕 위엔 한기가 스미지 않도록 파란색 방수천이 누덕누덕 발라져 있었고, 그마저도 그 위에 벽돌을 얹어 어설프게 마무리돼 있었다. 수십여 가닥의 전선이 전신주 하나에 엉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건조한 날씨로 마른 폐기물들이 곳곳에 버려진 골목에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고, 길고양이들은 낯선 이를 경계하고 있었다.

◆“열악한 거다, 이게 어디 삶인가”

마을 어귀에선 ‘수원’이라는 호(號)를 사용한다는 한 할머니(75)를 만났다. 코로나19에 한파까지 겹친 상황에 대해 수원 할머니는 “사는 게 우습다”며 자조했다. 자조의 이유를 더 묻고 싶었으나, 할머니는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6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의 골목은 대낮에도 어두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1.1.6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6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의 골목은 대낮에도 어두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1.1.6

해가 중천인 오후 2시에도 구룡마을 골목은 어둡고 음산한 기운을 풍겼다. 피복이 군데군데 드러난 전선과 줄로 묶어놓은 지붕들이 이곳의 처지를 설명해줬다.

길 가운데에 하수로가 있지만, 난간이 없고 폭이 좁아 위험 요소가 다분했다. 골목 주변에는 죽은 풀들이 널려있었고, 콘크리트 바닥은 곳곳에 얼음이 얼어있었고, 걸을 때마다 깨진 파편이 밟히는 소리가 났다.

집 문을 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이금자(가명, 80대) 할머니는 “한파인데 문이 고장 나 이젠 잘 닫히지도 않는다”며 “열악한 거다. 이게 어디 삶인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을 건물 대부분이 제대로 지어진 건축물도 아닌 데다 주민 개인이 임시로 보수해놓은 터라 어설픈 모습이었다. 지붕 위에 겹겹이 쌓인 파란 방수포를 보면 강풍에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겼다.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의 한 주택의 문에 한파 대비로 돗자리가 붙여져 있다. ⓒ천지일보 2021.1.6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의 한 주택의 문에 한파 대비로 돗자리가 붙여져 있다. ⓒ천지일보 2021.1.6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고충도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 느끼는 즐거움은 구룡마을 주민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이들에게서 이러한 즐거움을 앗아갔다.

옷자락이 해진 낡은 누빔조끼를 입은 박순자(가명, 80대) 할머니는 “그전엔 노래 교실도 다니고 산악회도 다녔다”며 “요즘엔 집에만 있는데, 사람들을 못 만나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찬바람에 어깨를 움츠린 박 할머니는 “매일같이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으니 사람이 멍해진다”며 “밖에도 못 나가고, 병원에 가고 싶어도 웬만해서는 잘 안 간다”고 코로나19로 인한 고충을 얘기했다.

그는 “필요한 걸 얘기해도 어차피 받을 수 없을 것”이라며 “생활이 이렇다고 누가 날 도와주겠는가”라고 회의감을 내보였다.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6일 서울 강남구의 구룡마을이 적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1.1.6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6일 서울 강남구의 구룡마을이 적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1.1.6

◆“주민들에 좋은 일 생겼으면”

처음 보는 취재진을 반갑게 맞은 김자현(가명, 80) 할머니는 대뜸 마스크를 확실하게 챙겨야 한다며 코로나19를 조심해야 한다고 연신 강조했다.

김 할머니는 “연탄 때고 전기장판을 켜면 지낼 만한데, 코로나19 때문에 후원도 다 끊어져 간다”며 “어려움이 많다. 전염병으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무서워서 병원도 못 간다”고 말했다.

하얗게 변한 연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빛바랜 흰색 의자에 앉아 그동안의 심정을 토로했다.

제일 힘든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 할머니는 해결해 줄 거냐고 물었다.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는 취재진의 답변에 김 할머니는 웃음을 지었다.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아갈 것 같은 구룡마을이지만 김 할머니에겐 여전히 사람이 사는 곳이다. 할머니는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 이 동네”라며 “아침에 서로 인사를 나누고 다들 친절하다. 그리고 굉장히 순하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동네를 걸으면서 김 할머니는 “주민들한테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멀어져가는 취재진을 향해 김 할머니는 굽은 등을 조금 펴며 조심히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