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경제논단] ‘촛불혁명’의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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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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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은 난동임이 하나씩 밝혀진다. 그에 편승한 경제는 이성과 합리성을 상실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성은 이론의 잣대가 되고, 합리성(rationality)은 동기에 의한 복잡한 실천 과정에서 경제성을 얻는다. 합리성을 좀 더 정확하게 풀이하면 ‘합리화의 과정(rationalization)’으로 규정할 수 있다. 물론 그 합리화의 문화는 국민에게 내면화가 되지 않고, 당면한 절박성을 풀지 못함으로써 배척당하면 곧 소멸하게 된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는 도구가 된다. 촛불혁명은 2016년 10월 24일부터 본격화됐다. 손석희 JTBC 사장은 ‘최순실 태블릿PC’로 국정농단을 폭로했다. 당시 민주노총은 손석희 사장의 선동술에 넘어가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을 꽉 메웠다.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부를 타도하는 일등공신이 됐고, 그 청구서를 청와대에 계속 보낸다. ‘노동자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12.29)에서는〈최악의 고용절벽에도 양대노총은 ‘호황’이라니〉라고 했다. “고용부가 집계한 ‘전국 노조조직 현황’(2019년 기준)을 보면 노조 조직률이 12.5%로 문재인 정부 2년 새 1.8%포인트나 올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은 253만 명으로, 양대노총 공히 조합원 100만 명을 넘었다”라고 했다. 민노총 10%의 강성 문화가 고용시장을 좌우한다.

청와대가 믿는 구석은 이들 강성노조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눈앞에 전개된다. 그들의 촛불 정신을 위해 청와대는 부지런히 칸막이를 쳐준다. “과속 인상한 최저임금, 중소기업계에 때아닌 퇴직금 정산 부담까지 안긴 주 52시간제, 서두른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안 등 친노조정책은 일일이 거론하기도 벅차다. 커지는 양 노총에 정부가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라고 했다.

국회는 영혼도 없이 이들을 위해 부역자로 자처하고 나섰다. 경제단체장은 중대재해법 이것만은 막아달고 애원한다. 근육 자랑을 일삼는 그들에게 이 요구가 먹힐 이유가 없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의 사망 등 중대한 사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 등을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했다”라고 한다.

국회와 노조의 정책이 이성과 합리성이 있을 이유가 없다. 국내 강성 노조는 ‘산업적 노조주의’가 아니다. 경영자와 노조와의 관계를 넘어선다. 그들은 노동생산성과 노동의 질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노조가 아니다. 작업장에서 경영자에게는 기업가 정신이 점점 줄어들고, 노조는 천직 의식이 사라진다. 노동의 질은 낮게 마련이고, 생산성은 평준 하향화를 일으킨다.

촛불혁명의 정신은 ‘사회정의 노조주의’에 속한다. 파업을 하면 청와대가 앞서 소방수 역할을 해준다. 강성노조는 온갖 정치 현실을 사업장으로 끌고 온다. 산업재해가 다수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노동문화를 갖고 있다.

그 결과는 오히려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해고되는 일이 빈번히 벌어진다.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때(2015.11) 검거 소동을 일으켰지만, 쌍용자동차의 운명은 지금까지 풍전등화이다. 강성노조가 지배한 쌍용차는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팔렸고, 지금 인도 마힌드라 회사가 74.6%를 소유하고 있다. 국제 경쟁력이 어느 분야보다 심한 자동차업계에서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게 될 전망이다.

조선일보 류정 기자(12.30)는 〈쌍용차 가동 재개… 이젠 인도 정부에 근로자 5000명 운명이 달렸다〉라고 했다. KDB 산업은행은 부지런히 혈세를 투입한다. 강성 노조도 이젠 ‘국유화가 대안이다’라고 한다.

촛불혁명의 경제는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조선일보 김정훈․원우식 기자(12.28)는〈2030 대졸 백수 19만 명… 1년새 40% 늘었다.〉, 배준용 기자(12.28)는 〈올해 빈곤층 272만 명… 文정부서 55만 명 늘어〉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 때 213만명으로 감소한 상태에서 더욱 상승하는 기조를 유지한다.

노동생산성, 노동의 질을 담보할 수 없는 현실은 장기적으로 오히려 자신들에게 불리한 현실이다. 그 문화에서 협력업체 현대모비스와 S&T 중공업 등과 공통의 가치(common value)를 창출하기가 불가능한 문화이고, 원천 기술개발은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강성 노조는 선택을 해야 할 시기가 왔다. 헌법 제119조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조항을 두고 있다. 제①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제②항은 “…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다.

후자의 경우 ‘경제의 민주화’는 “경제활동의 여러 분야나 단계에서 노동자들의 이익분배나 기업의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라고 했다. 김상철 한세대 교수는 바른사회TV(12.16)에서 “1920년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사회민주당의 노조에 의해 체계화됐다. 당시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던 힐퍼딩(Rudolf Hilferding)이 ‘조직 자본주의’라는 이론으로 혁명을 통하지 않고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라고 했다. 그런데 김 교수는 선전자본주의에는 경제민주화로 성공한 경우가 없고, 최근에는 베네수엘라 정도 채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제①항이 더욱 우리 문화에 맞고, 합리성도 존재한다. 삼성, LG, 현대 등 전자제품, 반도체, 수소차는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더욱이 중공과 북한은 이들 기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소수민족 착취와 농민공을 보면 마르크스가 원하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은 아니었다. 지금 시점에서 촛불혁명으로 인한 촛불 경제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한 것인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강성노조의 행동이 ‘합리화 과정’이 아니라면 촛불혁명은 촛불난동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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