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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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은 노무현 정치를 닮아갈 모양이다. 언론인을 귀찮은 존재뿐만 아니라 권력기구로 본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빈번히 ‘대통령은 권력이 없고, 검찰과 언론이 힘이 있다’라고 함으로 언론을 권력기구로 본 것이다. 물론 권력기구, 즉 신분집단이 된 언론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언론은 사회의 창의성과 역동성을 밑으로부터 받아 숙의(熟議)로 국가 발전의 원력을 삼는다. 새로 재정할 언론윤리헌장도 그 역할을 하도록 언론의 자유와 책임을 부여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게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언론윤리헌장은 헌법정신과 다를 수 없다. 헌법 전문에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여,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라고 규정한다.

국내에서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가 어떻게 세계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하는가’라는 연결고리가 의심스럽다. 실제 그렇지도 않다. 개인에게는 이성과 합리성이 존재한다. 우리 헌법정신은 자연권(natural rights)을 근간으로 한다. 개인의 생명, 자유, 재산 등 기본권을 존중한다. 그게 1948년 유엔의 헌장의 정신이다. 같은 맥락에서 대한민국 헌법도 1948년 유엔 감시 하에서, 선거를 치르고, 제헌헌법을 제정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지구촌’에 딱 맞는 헌법이다. 이 헌법은 개인을 단위로 한다. 언론은 공론장에서 그 역동성으로 여론을 조성하고, 사회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결국 그 정신이 이성과 합리성을 갖추게 되고 과거, 현재, 미래가 일정한 방향으로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우리민족끼리’도 자유를 제악하라는 규정은 맞지 않다. 헌법 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했다. 지금 청와대는 자유를 확장시킬 생각이 전혀 없다. 강호원 세계일보 논설위원(12.22)은 “자유가 헌신짝 취급을 당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자유라는 말을 입에 담은 적이 별로 없다.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아예 빼고자 했다. 어제 국무회의가 여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시킨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의결했다. 이제 북한에 전단 한 장 날려 보낼 수 없다”라고 했다.

야당은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는 비판을 한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12.19)는 이런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조폭정치에 짓밟힌 민주주의’라고 했다. 그만큼 개인의 자유가 유린되고, 생명, 자유, 재산이 침해된다는 소리가 된다. 물론 자유가 없으면 책임도 없고, ‘진실, 투명성, 책무, 인권 존중’ 등이 물거품이 된다.

세계가 연결된 인터넷 시대의 개인은 누구나 기자가 된다. 국내뿐만 아니라, 美국무성은 “정보의 확산을 범죄시해서는 효과적으로 인권을 향상시킬 수 없다”, 베네딕트 로저스 영국 보수당 인권위원회 부위원장은 “법안은 매우 충격적이며 기본적인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했다.

또한 1980년 벨그라드 유네스코 총회에서 발표한 맥브라이드(Sean MacBride) 보고서는 ‘자유로운 유통과 보다 광범위하고 균형 있는 정보 확산(a free flow and a wider and better-balanced dissemination of information)’을 강조했다. 개인은 ‘자유로운 정보 접근권’을 갖는다. 그건 다 개인의 차원이다. 그 만큼 ‘지구촌’에서 개인의 이성과 합리성이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론과 개인의 윤리는 다름 아닌 이성 판단의 기초가 된다.

노 전 대통령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졌다. 2005년 1월 27일 법률 제7370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을 제정했다. 그는 ‘신문윤리강령(1996 개정)’을 법으로 만들었다. 노 정권이 윤리를 법으로 만든 것도 이상하고, 언론의 자유를 축소한 채, 사회적 책임, 피해구제, 인격권 보호 등을 강조하는 것도 지나쳤다. 노 정권은 윤리를 법의 틀 속에 감금시킨 것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아닌 이상, ‘지구촌’ 하에 개인의 자유를 제약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게 가능하면 개인은 창의성과 역동성을 상실하게 된다.

문재인 청와대는 더욱 언론의 자유를 옥죈다. 상법 등 ‘규제3법’을 개정해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 배상죄’ 등을 설치하려 하나, 그게 다 언론 자유를 억압한 행위이다. 최근 언론진흥재단의 주관․후원으로 12월 16일 ‘언론윤리헌장 제정’ 공청회를 열었다. 물론 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이 주동이 돼 지난 9월 제정위원회가 설립했다. 자유를 언급하지 않지만 정부의 입김을 강하게 작동시킴을 알 수 있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 아무리 좋은 가치를 늘어놓아도, 그건 이성과 합리성이 작동한다고 볼 수 없다. 모든 일은 인지적, 도구적 합리성이 있고, 윤리적, 실천적 합리성이 존재한다. 물론 인간 자유의지는 윤리, 즉 선악의 구분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윤리헌장 제정팀은 언론의 자유를 제외시킴으로써 이성적 판단을 경시하고 있다.

김달아 기자협회보(12.16)는 “진실, 투명, 인권, 공정, 독립적, 토론장, 다양성, 품위 그리고 디지털 기술로 인한 확장성”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새 언론윤리헌장은 가장 중요한 자유의 개념을 제외시켰다. 공산주의 집단마냥 기자가 권력기구, 혹은 신분집단에 머무르고 싶은가?

없는 노예에게 아무리 좋은 가치를 이야기하더라도, 그 말들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지구촌’ 하에서 특수성의 가치를 이야기해도, 언론의 기본, 즉 보편성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 언론은 입법, 사법, 행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때 이성과 합리성을 회복할 수 있다. 사회에서 자유의지가 결핍하게 되면 곧 창의성과 역동성이 질식을 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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