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지난 20일 스리랑카에서 온 여성노동자 속헹(30세)씨가 포천의 한 농장의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주노동자의 비인간적인 주거환경이 큰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속헹씨가 거주하던 곳은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되는 비닐하우스 내 간이시설이었고 사망 이틀 전부터 전기가 거의 켜지지 않다가 하루 전에는 완전히 끊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날 낮 기온이 영하 18도였는데 전기까지 끊긴 곳에서 홀로 잠자리에 든 뒤 숨진 채 발견됐으니 동사가 사망 원인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 건강이 악화됐고 간경화까지 와서 몸은 더욱 쇠약해지지 않았나 싶다. 영하의 날씨에 전기조차 끊긴 비닐하우스 내 간이시설에서 잠을 청하다가 지병이 급속히 악화돼 사망하게 되지 않았나 하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엠비씨(MBC)에서 나와 “날씨가 춥게 되면 가지고 있던 질환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경찰은 ‘동사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국과수의 구두소견을 서둘러 발표할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조사와 수사가 이루어진 뒤 발표해야 옳은 일이었다. 종합적인 조사가 이루어지려면 국과수와 경찰에만 맡겨 놓아서는 안 된다. 경찰은 자신의 관내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다. 또 사망사고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을 주는 기관도 아니다.

사인을 종합적으로 살피기 위한 방법으로는 국회의 국정조사를 생각해 볼 수 있고 의료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인권위 조사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인에 대한 정확한 규명은 매우 중요하다. 대충 봉합하고 지나간다면 똑같은 일이 또 다시 반복될 테니까.

그 동안 이주노동자들의 비닐하우스 거주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정부는 묵인하는 자세를 취했다. 문제가 되니까 나서는 체 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는 이주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에서 거주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노동부는 묵인을 넘어 조장하기까지 했다. 노동부는 농장주가 비닐하우스 안의 샌드위치 패널로 된 가건물이나 컨테이너에 거주하는 이주민에게 기숙사비 명목으로 월급을 일정하게 뗄 수 있는 지침까지 만들어 보급했다.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노동 관련 부서가 노동법을 어긴 것이다. 그것도 대놓고.

노동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주거문제의 주무부서인 국토부, 안전 문제의 주무부서인 행안부도 책임이 있다. 가장 큰 책임자는 대한민국이다. 국회도 정부도 사법부도 책임자다. 지자체와 지자체장의 책임 또한 크다. 이주노동자의 비닐하우스 거주 실태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겨울에 난방도 잘 안 돼 더욱 위험하다는 것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니까.

사망사고가 일어난 지자체인 경기도의 이재명 지사는 “경기도지사로서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에 소홀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실태조사를 한 뒤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또 “사람은 모두 존귀한 존재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받아야 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말도 했다. 좋은 말에다 책임을 인정하는 것 같은 태도를 취했지만 무책임한 언행이다.

생명을 빼앗긴 문제인데 ‘이주노동자의 권익’을 들고나오고 잘못했다고 하지 않고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에 소홀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흔쾌히 인정한 것도 아니고 잘못을 고백하고 사과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이라도 자신은 물론 경기도의 직무유기에 대해 분명히 인정하고 사과를 해라. 실태 조사할 때가 아니다. 이미 실태는 다 알려져 있다. 당장 열악한 주거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계획’을 내고 ‘실행할 의지’를 드러내야 한다. 책임지고 대안을 마련하는 작업에 즉시 착수하라.

마지막으로 정부와 국회에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비닐하우스 근처에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할 수 있는 조립식 주택 건립을 허용할 것을 제안한다. 다음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이주노동자 전원이 안전하고 살만한 조립식 주택에서 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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