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34세 택배 노동자가 사망했다. 지난 7월 입사 이후 다섯 달 동안 20킬로나 몸무게가 빠졌다. 하루에 14시간 이상 일을 했다. 이게 사람 사는 사회인가.

그가 다니던 롯데택배는 코로나로 영업이익이 30% 이상 증가됐음에도 노동자가 받는 배송 수수료는 삭감된 채 지급됐다. 다른 택배사와 달리 상하차비를 부과했다. 지난 10월 노동자들이 파업을 결정하자 노조 있는 사업장의 직장을 폐쇄하기조차 했다. 노동자 요구를 수용해 노동조건을 개선하려하지 않고 강압으로 억눌렀다.

올 들어서만 16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로 숨졌다. 다른 직군과 비교할 때 특정 직군에서 사망자가 많이 나오면 국가기관은 즉시 원인을 분석해서 대책을 내야한다. 원인은 무엇일까? 택배업은 10년 전에도 노동 강도가 세기로 유명한 업종이었지만 2010년 이후 더욱 세졌고 코로나 이후 최고로 세졌다. 택배 물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한 반면에 인력 증원은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대선 때 경제민주화가 크게 쟁점이 된 직후부터 여러 가지의 경제민주화 의제가 한꺼번에 등장했다. 반값등록금 문제 같은 민생의 변화에 대한 요구가 있는가 하면 갑을관계 같은 사회구조 변화에 대한 요구도 등장했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노동이 이루어지는 현장, 곧 기업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갑을 관계이다. 우체국 택배를 필두로 한 택배노동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면서 택배업체의 실상이 세상에 드러났다. 우체국 택배의 노동현실은 악명이 높았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택배회사 실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망자가 나올 때 업체가 보이는 반응은 ‘그건 과로사가 아니다’고 말하는 것이다.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다. 정치권은 기업 측의 목소리는 귀담아듣는 반면에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외면하기 일쑤였다. 문제가 해결 안 된 가장 큰 이유이다.

죽음의 행렬하면 생각나는 회사가 있다. 바로 쌍용차다. 쌍용차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무려 30명이나 자살했다. 해고자 149명 중 20%에 이르는 노동자가 해고의 여파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현대사 최대의 비극 가운데 하나다. ‘택배 노동자 한 해 16명 사망 사건’은 또 다른 현대사 비극이다.

여러 가지 행렬이 있지만 죽음의 행렬만큼 슬픈 행렬은 없다.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끌려가는 죽음의 행렬도 아니고 제국주의 군대와 경찰에 의해 사형 집행장으로 끌려가는 식민지 민중들의 행렬도 아니다. 두 죽음의 행렬 모두 일터 문제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무관심에 빠진다면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같은 행렬이 재발될 것이다. 모두가 참견하고 모두가 내 일이다 생각하고 한마디씩 해서 죽음의 행렬을 멈추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사회 구성원 가운데 소외 받는 사람들의 외침에는 무심하기 이를 데 없는 사회다. 회사의 갑질에 고통스러워하는 택배노동자의 외침은 그저 그들만의 외침으로 취급될 뿐이다. 나라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사회 구성원들의 삶에 도움 되라고 있는 것 아닌가?

정치권은 낮이나 밤이나 민생을 외친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중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한국의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국회를 마음대로 하는 정치세력은 거대 정당들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이야기다. 두 정당은 상당히 다른 것처럼 행동하고 실제 다른 면도 일부 있지만 민생문제와 안전문제에 있어서는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생을 개혁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면 기득권에 손을 대야 한다. 일방통행을 보장하는 지배종속 관계를 변화시켜야하고 상당한 규모의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기득권 체제의 변화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두 정당은 모두 기성 사회질서의 변화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 변화가 생길 수가 없다. 민중들이 스스로의 힘을 키우지 않으면 대안이 없는 사회가 됐다.

정치권은 올해가 가기 전에 노동자들이 원하는 생활물류법안을 통과시켜라.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된 법이다. 그 때 법률이 만들어졌다면 오늘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와 거대 정당, 국회가 살인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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