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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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기자 직업이 흔들리고 있다. 회사는 경영압박에 기자를 못살게 굴고, 기업인은 사주를 협박해 기사에 압력을 행사한다. 그렇다고 정치인과 사회·시민 단체가 기자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지 않는다. 문화가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文)이 득세하는 세상이고 보면, 언론의 자유를 논한다는 자체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이때 언론인을 겁박하는 2개의 법률안이 법무부에서 발의됐다. 9월 28일 입법예고한 집단소송법안이 그것이다.

요즘 ‘대깨문’ 문화가 창궐한다. 조선일보 안용현 논설위원은 〈‘대깨문’식 문화혁명(11.4)〉이라는 칼럼에서 “마오쩌둥은 ‘동지와 적(敵) 구별이 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선동했다. 자신의 경제 실험을 비판하거나 이념보다 실용을 내세우면 누구든 ‘적’으로 몰았다. 선전 기관은 ‘모든 괴물과 악마를 척결하라’고 기름을 부었다. 누군가 대자보로 ‘좌표’를 찍으면 홍위병들이 집단 린치를 가했다”라고 했다.

그게 그 때의 일만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2일 서울·부산 보궐선거를 위한 전 당원 투표에서 86.64%가 찬성했다고 한다. 이 투표 결과로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이 두 지역에 후보자를 내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당헌·당규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로 있을 때 결정한 사항을 뒤집은 것이다. 그 결과 당원 투표 3분의(당헌·당규의 정족수) 1을 미치지 못했다. ‘단순 의견수렴’이라는 편법 운영으로 투표의 정당성을 처리했다. 21만명 정도가 투표를 마쳤는데, 20만명 내외가 ‘대깨문’이라고 한다.

친문(親文) 운동권 정치인이 앞장서 바람을 잡는다. 기자협회보 박지은 기자(10.6)의 기사에 따르면 “B기자는 ‘그동안 기사에 문제가 있다면 의원이 따로 연락해 틀린 부분이 있으면 조정하거나 기사 링크를 걸고 그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던 방식이었다… 언제부턴가 정치인들이 기자 실명을 거론하고 있는데 기사에 대한 비판보다 기자를 향한 열성 지지자들의 인신공격, 악플 공세를 유도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다고 본다’라고 했다”고 했다. 대깨문은 기사, 기자 이름 등 좌표를 찍어 악플을 달아댄다. 아울러 “‘건전한 정치와 언론의 관계를 말하면서도 지지자들을 이용한 언론 길들이기 아니냐는 의심도 든다’라고도 말했다. 이 기사에서 또 다른 기자는 “특히 여성 기자에게는 ‘가만두지 않겠다’ ‘찔러 죽이겠다’ ‘너 이름으로 기사를 썼으니 당해도 싸다’고 하는데 과연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로 이런 성적 모욕을 당해도 싼 건가’”라고 했다. 기자에게 ‘좌표 찍기’가 성행하고 있는 분위기가 일상화됐다.

이런 문화에서 언론의 자유는 질식당하게 마련이다. 언론은 입법, 사법, 행정의 체제 밖에서 체제 안을 감시하는 기구이다. 이 기구에까지 체제 안으로 끌어들여 통제하려고 하면 청와대는 언제든 인지적 도구적 이성을 남발하게 된다. 그들은 윤리적, 실천적 정당성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 길은 국가가 파시즘으로 가게 된다.

한편 법무부가 ‘징벌적 손배제’를 입법예고했다. 기자협회보 강아영 기자(10.28)는 “언론보도 피해에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상법 개정안(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입법예고했다. 물론 ‘상법 개정안이 과잉규제이자 민·형사상 이중처벌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라고 했다. 이에 발맞춰 지난달 27일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등 언론 3단체 반발하고,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뿐만 아니라, 법무부는 9월 28일 자 ‘집단소송법(안)’을 입법예고했다. 바른사회TV(10.29)는 ‘공정경제 3법, 집단소송법을 중심으로’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 나온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석훈 교수는 “기업의 가해 예방을 위한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을 모든 분야에 무제한 확대 적용했다”라고 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원고의 주장, 증명 책임 완화, 문서·자료의 증거개시 제도 도입’이라고 해, 쉽게 집단소송을 할 수 있게 했다. 그 법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사실상 민사배심제의 도입으로 간주한다. 시도 때도 없이 인민재판이 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민 참여재판은 형사재판에 한정된 것을 민사재판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 집단소송법의 특징은 소송허가 결정에 피고가 불복을 불가능하게 했다. 피고에게는 손발을 묶어놓고, 원고에게만 특혜를 주는 꼴이 됐다. 또한 이 법안은 ‘공통의 이익을 가진 다수인의 피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게 하는데 언론 내용은 거의 전부 여기에 속한다.

만약 대깨문 20만명이 물려 다니면서 집단소송를 낸다면 언론보도를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원고는 절차를 간소하게 함으로써, 언제든지 패거리를 모아 소송을 할 수 있다. 그 패거리는 언제나 빠질 수(opt out), 들어올 수(opt in) 있게 했다. 집단소송법과 징벌적 손배제가 채택될 경우 언론은 청와대의 선전 선동 기구만 될 것이 뻔하다. 현재 언론계의 분위기는 침울하다. 톤을 조금 높이면 청와대가 개입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면 그 다음날 논조는 위축되고, 절박한 이슈를 계속 보도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더욱이 언론사 행정처분까지 주어지는 상황이다.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의 ‘승인 취소냐 영업정지냐, MBN 운명은’ 기사(10.27)에 따르면 방통위가 언론사를 승인 취소까지 한다.

대깨문의 세상, 홍위병 세상이 눈앞에 전개된다. 현 사회는 1966년 천안문 사태가 돌아오는 형국이다. 물론 언론도 책임 없이 보도하고, 패거리 오보하는 경향은 대깨문 욕할 입장이 아니다. 언론은 2008년 광우병 파동, JTBC ‘최순실 태블릿PC’ 등 패거리 오보를 했다. 그게 대깨문의 좌표 찍기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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