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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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메시지이다’라는 말은 기술의 변화에 따라 미디어 형태가 바뀌고, 그 내용도 함께 바뀌게 된다. 물론 미디어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자체가 변화를 겪게 된다.

주요 미디어는 중심 패러다임을 형성하나, 기술의 발달로 중심 미디어의 무게축이 바뀌게 된다. 토마스 쿤은 정상적 과학이라는 용어로 그 사회의 과학 패러다임 변동을 설명했다. 미디어 세계라고 이들 혁명과 다를 바가 없다. 수용자는 미디어를 통해 그날의 정보를 얻게 된다. 신문, 방송 등이 주류 매체로서 수용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1990년 이후 월드 와이드 웹(WWW)이 생기면서,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활성화돼 미디어 형태가 다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트위터, 유튜브, 카카오톡, 페이스북, 팟캐스트 등 SNS가 삶의 형태를 바꾸고, 정치인의 지형도도 변화시킨다.

쿤에 따르면 “정상적 과학에서 변칙성의 인지, 패러다임으로부터 유도되지 않는 현장이 인지된다”라고 했다. 이런 과정은 새로운 형태의 인지 방법을 준비하는 데 필수적 역할을 한다.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는 과거의 미디어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다. 신문에 익숙했던 수용자는 방송의 뉴미디어를 이해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러나 방송은 이젠 올드 미디어가 되고 있다. 덩치가 큰 회사는 SNS의 1인 방송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인 방송은 너무나 개인적이며, 사적인 담론부터 사회구조까지 다룬다. 그 기동력은 기존의 방송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게 한다. 변칙성이 미디어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예민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벌린(Isaiah Berlin)은 ‘자유의 두 가지 개념’을 설명했다. 하나는 ‘~으로 부터의 자유(freedom from)’ 즉 소극적 자유이다. 자신을 버려두라(Let's me alone), 나를 간섭하지 말라, 언론의 자유를 허용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에 논의된 것은 ‘~를 위한 자유(freedom for)’가 주류 담론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소극적 자유가 아니라, 적극적 자유가 성행했다. 공중을 위해, 사회의 필요를 창출하기 위해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말할 수 있게 하는 자유, 미디어의 개념이 등장했다.

SNS가 활성화되면서 어느 누구도 기자가 될 수 있다. 큰 방송사 등은 여간 거추장스럽지 않다. 2020년 미국의 대선을 봐도 변칙성이 감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로 전 세계인을 상대한다. 기존 언론인으로 봤을 때는 거북스럽다. 저런 몰상식한 사람이 저널리스트 행세를 한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 1833년 대중 신문이 생기면서, 쌓아온 저널리스트 윤리와 품격을 한꺼번에 붕괴시킨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따지고 보면 기존 언론은 욕할 것도 못된다. 非전문가 집단도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으로 ‘적극적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시민들은 객관성, 공정성 등에 대한 개념이 부족할지라도, 개인의 생각을 SNS를 통해 가감 없이 쏟아낸다. 문제는 기존 언론이 SNS의 등장으로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너무나 사소한 일을 갖고 다루는 SNS를 닮아간 것이다. 일상생활, 즉 삶의 세계(life world)가 SNS에서 익숙하게 됨으로써, 기존의 저널리즘 관행, 가치 등을 상실하게 된다.

2020년 미국 대선은 SNS 시대가 됐다. 그런데 기존미디어가 SNS를 닮아 정파성을 지닌 양상이 대량 오보를 내게 됐다. 트럼프의 트위터를 미워한 나머지, 사실에 객관성, 공정을 상실하게 되고, 대량 오보가 계속 나온 것이다. 미디어의 정상 과학에서 변칙성이 예민하게 나타났다. 정상적 과학의 퍼즐들이 예상된 해답을 얻는데 지속적으로 실패함으로써 패러다임의 변화가 예측된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는 새로운 메시지를 생각한다는 것을 기성 미디어 관리자는 잊고 있었다. 새로운 미디어는 새로운 틀에서 이해해 주지 못한 것에 착오가 생긴 것이다.

기존 미디어는 현장과 거리가 너무 멀었고, SNS는 현장에 가까이 있다. 기존 미디어는 11.3 선거부정을 원론적으로 접근했고, SNS는 부정선거 팩트를 현장에서 정확하게 잡아냈다. 부정선거 사례가 쌓여간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문제까지도 부정선거의 내용에 포함돼 있었다. 그 내용이 SNS를 통해 전 세계에 퍼져나간 것이다. 게이트키핑이 강하게 작동하는 기존 미디어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 일어난 것이다.

기존 미디어는 벌써 권력기구가 돼 입법, 사법, 행정 등과 한 패거리가 된 상태다. 이념과 코드가 그들의 무기로 변해 있었다. 출입처 중심의 선전, 선동의 기능이 한계에 직면한다. 시민들은 언론의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 것을 알게 됐다. 기존 언론의 신뢰는 졸지에 무너졌다.

너무나 일상적 내용이 선거부정을 잡아내는 감시기능으로 작동한 것이다. 권력기구화가 된 기존 미디어에 대한 성찰 시기가 왔다.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 카카오톡이 주류 미디어를 넘보게 됐다. 그 많은 언론기구는 미디어 혁명 하에 무용지물이 되게 생겼다. 전 국민이 기자가 된 시대에 적은 숫자의 언론인으로 국민들 전체를 커버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진정 삶의 세계가 제도권 안으로 흡입하는 시대가 왔다. 경직화된 관리구조, 즉 재봉건화된 체제를 개혁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미디어 세계의 패러다임이 요동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 대선은 미디어 세계의 혁명을 증명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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