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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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고독사한 사람의 소식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가난하게 삶을 마감한 사람도 무엇인가는 남기게 마련이다.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할머니가 죽음을 맞게 됐다. 할머니는 평소에 지하철역 등에서 구걸을 해서 연명을 하다가 갑자기 추워진 어느 날,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장례를 치르고 시청직원들이 나와서 유품을 정리하다가 침대 밑에 있던 150만 달러를 발견했다. 큰돈을 두고도 할머니는 배고픔과 추위를 참으면서 살았던 것이다.

이것은 뉴욕의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언젠가 아는 사람이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세를 줬는데 만기가 됐을 때 보니 난방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서 다 녹슬고 막히는 고장이 났더라고 한다. 물론 계약을 할 때 보니 자식도 있는 유복한 할머니였는데도 말이다. 한국에서 난방을 사용하지 않고 겨울을 나다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큰돈을 남겨둔 채 배고픔을 참거나 추위를 참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이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말이다. 우리에게는 돈 이외에도 많은 자원이 있다. 할 수 있는 일, 할 수 있는 말, 보이지는 않지만 사랑 같은 것도 있다.

2020년 9월 30일 국내 최고령 현역 의사인 한원주 매그너스 요양병원 내과 과장이 향년 94세로 숙환에 의해 별세했다. 생전 한 선생은 전 재산을 모두 기부하고 고령임에도 현직에서 많은 환자를 돌보면서 감동을 줬다. 40여년 전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수십 년간 무료 진료 봉사활동을 한 바 있는 한 선생이 별세 전 가족과 세상에 남긴 말은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였다고 한다. 이렇게 훌륭한 삶은 흉내를 내기도 어렵다.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다만 해당 기사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죽음 후에 이불 밑에 아끼고 아껴서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한원주 선생은 분명 평소에도 힘내, 사랑해 등의 말과 감성을 풍부하게 느끼게 하는 말들을 많이 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도 그런 말을 아끼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낄 것을 아껴야지,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 힘내, 이런 말들은 아끼지 말아야겠다. 이러한 말들은 들었을 때만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말을 해보면 훨씬 더 행복하다. 가끔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나 혼자만 마음앓이를 하는 것 같아서 상대에게 어렵게 표현을 하고 나면 시원할 줄 알았던 마음이 더 괴롭다. 스스로 옹졸하고 수준 낮은 사람이 됐다고 느낄 때의 괴로움은 자신을 잘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몇 번씩은 느껴보았을 것이다.

사실 위에 나열한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거나 적어도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속담에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처럼 이런 말들도 남들로부터 들어본 사람,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말을 듣는 사람보다 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더 행복하다. 적어도 어느 날 그런 말들을 아끼고 아껴서 썩혀둔 채 세상을 떠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오늘도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이 멋있어서 고맙고, 나와 인연된 모든 이들 덕분에 행복하니, 아끼지 말고 많이 표현하면서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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