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not caption

당무유용(當無有用)이라는 말이 있다. ‘그릇은 비어 있음으로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라는 뜻이다. 비움이 쓰임이 된다니…. 지금껏 배우고 알았던 것과 크게 다르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져야 한다고 배워오지 않았던가?

생각조차도 무엇인가로 꽉 차 있으면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래서 상대의 말을 왜곡해서 듣기도 한다. 예전에 친정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오소리감투’ 이야기가 생각난다. 딸한테 비싼 오소리감투를 선물 받은 노인이 자랑을 하고 싶어서 장에 나갔다. 지나가던 사람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니 이 노인은 ‘응, 오소리감투야’라고 대답하고, 건강하시냐고 물으니 ‘응, 무척 따뜻하지’라고 대답했다는 내용이다. 어렸을 때에는 설마 그럴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이다. 

최근에 본 책 중에 ‘금융투기의 역사’라는 책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1830년대 시카고와 일리노이 사이에 건설 중인 운하 주변의 땅이 투기대상이 됐다. 땅 투기에 혈안이 된 한 내과의사가 왕진을 요청받아서 가게 됐다. 환자를 돌보는 일보다 땅 투기에 더 정신이 팔려있던 그는 환자도 보는 둥 마는 둥하고 서둘러 처방전을 써주고는 집을 나서려 했다. 환자가 약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묻자, “아차! 운하계획에 따라 드세요. 1년이나 2년 3년에 하나씩 드시면 됩니다”라고 엉뚱한 대답을 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에 버금가는 실수들을 수없이 하면서 사니 말이다. 모든 것이 꽉 차면 넘치게 돼 있고, 새로운 것을 넣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창의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의 전제조건은 머리를 비우는 것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야후가 되었든 네이버가 되었든 각종 뉴스나 정보들로 메인화면이 꽉 차 있었다. 내가 궁금한 것에 대한 모든 정보는 그곳에 있을 것 같아서 안정감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과거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지금 모든 길은 구글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구글의 혁신은 바로 작은 검색창 하나로 시작됐다. 지금은 네이버도 메인화면에는 검색창 하나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비해서 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받는다. 절대로 가득 차 있을 때보다 못하지 않다. 일상에서도 예를 하나 들어보자. 사고 싶은 옷이 있어도 옷장에 옷이 가득하다면 옷 사는 것이 부담스러워진다. 옷장을 많이 비워둘수록 정말 사고 싶은 옷이 생겼을 때 부담 없이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요즈음은 ‘멍 때리기’가 유행이다. 예전 같으면 멍 때린다는 표현은 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멍 때리기가 우선돼야 좋은 생각, 창의적인 생각이 나올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늘 완벽함으로 일관될 때에는 행복함을 느낄 수조차 없다. 뭔가 부족하고 비워질 때 오히려 행복했음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면 요즘 코로나로 답답함을 겪으면서 예전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채워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비우면서 행복함을 찾고 느끼는 연습이 필요할 때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