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역사는 과연 반복되는 것일까?’ 동서고금에서 이 물음에 관한 대답은 반반이다. 어떤 정치학자들은 명백하게 같은 건 아니지만 발생원인과 과정, 결과를 본다면 반복된다고 하고, 또 역사학자를 포함한 부류들은 똑같은 역사는 없으니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두 가지 답 가운데 어느 것이 정답이라 할 수 없지만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반면교사로 여기면서 잘 정립된 역사관을 만들어가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기도 하다. 

미국 역사학자인 예일대 티머시 스나이더(1969~) 교수는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우리에게 가르쳐준다’고 했다. 돌고 돌아가며 반복되는 듯한 역사의 교훈을 일깨우는 말이다. 스나이더 교수는 미국의 유명한 역사학자로서 주로 중유럽과 동유럽사와 함께 홀로코스트를 연구한바,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을 집중 조명해 이 분야에 대해 전문역사학자로 소문나 있다. 여기에서 ‘홀로코스트(Holocaust)’라 함은 ‘일반적으로는 사람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죽이는 행위’를 의미하고 있는 용어다. 

스나이더 교수가 2017년 4월에 출간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준 ‘폭정(On Tyranny)이라는 저서가 항간에 국내에서도 눈길을 모으고 있다. 그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고 싶었던 내용들이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여름에 이르기까지 급변하는 우리사회에 어두운 구석을 재조명해주기 때문이다. 그가 정의하고 있는 폭정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 알고 있는, 그리하여 교훈으로 삼아야할 대원칙으로서 특히 민주주의사회에서 큰 시사점을 주고 있는 것이다.

폭정(暴政)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포악한 정치’라는 의미다. 통치자가 피치자에 대해 행해지는 모든 일들을 말함이다. 그런데 스나이더 교수가 펴낸 폭정이라는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폭정의 정의는 이해하기가 쉽다. “한 개인이나 그룹이 탈법으로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 파워(Power)를 만들어 남용을 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는바, 권력자 개인이나 그 집단부류들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되면 사전에서 정의되는 ‘포악한 정치’가 되기 십상이다. 

스나이더 교수의 ‘폭정’은 사례 위주로 간결하게 정리돼 있다. 그 책에는 총 20편의 소제목이 붙여져 있는바. 제1편은 ‘미리 복종하지 말라’ 제2편은 ‘제도를 보호하라’에서부터 제18편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침착하라’ 제19편은 ‘애국자가 되라’ 마지막 제20편은 ‘최대한 용기를 내라’이다. 이 소제목은 민주주의사회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이 안전을 지키고 자기네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생활의 지혜가 담겨져 있는 행동요령이라 할 수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그 내용들이 하나같이 현실 속의 정치참여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홀로코스트의 사례를 들었다. 히틀러의 나치시절인 1933년 2월 27일에 발생한 베를린제국의회 ‘의사당 화재사건’이다. 당시 히틀러 총리가 국권의 상징이기도 한 의사당이 전소되자, 이를 정치적 승부처로 삼았다. 일부 정치인, 지식인들이 조종해 방화사건이 일어났다며 일방적으로 여론화시켜 수천명의 구국인사들을 무차별 체포했다. 의회를 장악한 후 숫자를 앞세워 수권법(授權法)을 통과시켰으니 공포정치, 그야말로 폭정이었다. 히틀러와 나치당은 국가적 재난을 이용해 야당의 압박도구로 삼고 권력 독단의 전체주의를 완성시켰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2020년 여름의 대한민국의 현실은 참담하다. 결국엔 정부가 전염병 방지에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해 코로나19가 확산일로 위기에 처해지게 됐다. 여당에서는 그 빌미를 일부 보수단체의 광화문 집회에 터잡고 있다. 집회개최 목적이 코로나19를 창궐시키고자 했던 건 분명 아니다. 주최 측의 목적은 문재인 정부의 부정부패, 추미애 법무장관의 직권남용, 민주당 지자체장 성추행규탄대회 등이었지만 지금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통합당이 마치 코로나19 확산의 공범(?)인양 덤터기씌우는가 하면, 심지어 민주주의의 절대선(線)인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허가해준 법원 판사에 대해 탄핵 청원이 쇄도하는 건 문제가 있다. 우리사회에 나타난 현상들이 그와 같으니 스나이더 교수가 ‘폭정’에서 강조하고 또 우려한 바대로 ‘갑작스럽게 닥친 재앙이 견제와 균형을 끝장내고 야당을 해산시키고 (사법부의) 공정재판의 권리를 중단시킨다’는 권력남용 경계는 선견지명이 아닌가. 

코로나19 재확산 위기에서 보건재앙 방지가 급선무이지만 여당은 국가적 재난을 이용해 야당을 탄압하고 집회허가한 판사에게 재갈 물리려는 행동에 스스럼없는 현실이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거늘, 행여 폭정이 대형재난 뒤에 숨어 민중을 위하는 위장술로 민주주의를 괴사시키려는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역사의 교훈을 거듭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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