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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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가 1991년 설치된 이후 지방자치 30년이 가까워져 오지만 아직까지 완전결정체로서 제도적 장치는 미흡한 편이다. 정당공천제가 기초의원까지 실행되다 보니 중앙정치를 배운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방자치를 훼손하는 폐해 또한 만만치가 않다. 기초의원마저 중앙정치를 흉내 내다 보니 지방자치의 취지가 무색되고 그 본질이 전도되는 현상들이 전국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해악들은 정당입김으로 지방의원의 권능마저 흔들리는 한계에서 기인되기도 하지만 의원의 직무능력 부족과 함께 제도적 장치 미비로 인한 입법불비(立法不備)에도 있다.

지방자치가 보다 성숙되려면 지방자치법령에서 중앙권한의 지방 이양이 잘 돼야 하건만 1949년 8월 15일 제정된 지방자치법이 전부 개정된 것은 1988년과 2007년 두 차례뿐이고, 일부개정에서도 중앙권한의 대폭 이양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어떤 중대한 사안들이 입법돼 있지 않았거나 또 법에 규정돼 있어도 충분하지 않으면 의외로 부작용이 커지는바, 법제화 미흡은 지방의회와 의원의 자의성(恣意性)을 부추기며 위법행정을 조장하는 근원이 된다. 최근 들어 지방의회에서는 지방자치법상 단 하나의 조항으로 돼 있는 의회 의장과 부의장에 대한 불신임건 조항 때문에 혼란이 따르고 이로 인한 소송이 이어지고 있는 게 단적인 그 사례다.

지난해는 대구시동구의회와 강원도 영월군의회에서, 또 올해는 경북 상주시의회에서 의장불신임이 가결된 사단이 벌어졌고, 현재에도 경남도의회와 양산시의회, 목포시의회 등에서 의장불신임건이 상정되는 등 지방의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지방의회 의장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아니할 경우 지방자치법 제55조 제1항에서 명시된 바에 따라 불신임당해 그 직에서 해임된다. 이 권한은 지방자치법에 의한 자율성이 보장되는 지방의회의 본연의 권능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지방의회에서 정치적 목적 등으로 적당히 구실을 달아 불신임안을 발의하고 의원들이 마치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쉽게 처리하기도 하는바, 문제는 그 과정에서 법적 절차를 어기고 실제 불신임 사유에 해당되지 않음에도 처리한다는 데 있다.

지난해 10월경 의결된 대구동구의회 의장 불신임건도 민주당 구의원이 수적 우세를 내세워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처리하면서 응당 거쳐야 하는 운영위원회의 사전 의결을 하지 않고 질의토론 없이 자유한국당(현재 국민의힘) 출신 의장을 해임시켰다. 결국 이 건은 의장 불신임의결 취소 가처분신청으로 이어졌고, 지난 7월에 법원으로부터 위법처리한 대구 동구의회가 된서리를 맞았으니 발의의원들의 모양새만 구겼고, 의원 상호 간 갈등만 증폭됐던 것이다.

지방자치법 제55조 제1항에 명시된 불신임의결은 명확하다. ‘지방의회의 의장이나 부의장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아니하면 지방의회는 불신임을 의결할 수 있다’는 것인즉 지방의원이 소속한 의회의 의장 등이 위법하거나 직무해태를 할 경우 얼마든지 불신임 패를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 발의 사유는 의장의 직무에 분명해져야 만이 가능한 것인데, 정치적 목적으로 막무가내로 하는 경우가 있으니 상주시의회 의장불신임사례다.

보도내용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실시된 상주시의회 후반기 의장 선출에서 미래통합당(현재 국민의힘)이 자체 경선해 후보자를 내정했지만 “자격이 부족하다”며 일부 의원이 반기를 들어 전반기 의장을 재당선시켰다. 선출된 의장이 당방침을 따르지 않았다고 의원들이 불신임안을 발의한 것인데, 정당의 일이 어떻게 지방의회 의장 불신임사유가 된단 말인가. 총 4건의 발의사유 중 정치적 이유 외에 직무와 관련성이 있는 것은 의회직원이 착각해 본회의 참석의원 수를 오기했던바 그 문서를 의장이 결재했다고 해서 허위공문서 작성했다는 발의사유를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불신임안은 의장을 그 자리에서 해임하는 중차대한 것으로 당사자에게 소명기회를 준 뒤, 질의와 표결을 거쳐야함에도 해명 기회를 박탈하고 적법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니 무법천지가 따로 없다. 그러니 의장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를 수행한 적은 전혀 없다’며 항변하고 법원에 제소했다. 회의규칙대로 질의 토론을 하지 않고 신상발언 기회를 박탈한 절차적 위법성에다가 발의 사유가 법규정에 맞지 않으므로 실체적 위법성까지 곁들인 상주시의회의 의장불신임 건은 수준 이하요, 지방자치를 후퇴시키는 일이 아닌가.

지방의회가 의장을 선출하거나 의장을 불신임하는 것은 해당 의회에 보장되는 자율권이다. 그렇더라도 지방자치법 규정에는 적합해야 한다. 지방의회 의장에게 요구되는 준법성과 의장의 직무적 책임성을 다하지 못할 경우 그 제재수단으로써 불신임제도가 있는바, 설령 불신임이 제기됐다 하더라도 불신임사유의 중대성 등을 비교형량해 봐야 함인데, 법에 맞지 않는 적당한 구실로 발의하고 위법하게 불신임을 의결했다면 이는 지방자치를 훼손하는 일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한탕주의로 해결한 상주시의회의 의장불신임 건은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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