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 소장

 

“사람은 태어나면 한양으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옛날 속담이 있다.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선 좋은 환경이 뒷받침되는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성공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렸기 때문일까. 서울뿐 아니라 수도권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전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한다. 양질의 일자리와 교육, 문화 등 인프라 혜택이 몰려 있는 수도권 집중현상은 좀처럼 꺾이질 않고 있다. 

국내 상장회사의 70%, 대학과 일자리가 대거 수도권에 몰려 있다. 수도권 과밀화의 폐해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런 이유로 국토 균형발전과 서울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해 우여곡절 끝에 2012년 7월 1일 행정중심 복합도시인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했다. 서울과 과천에 분산돼 있던 9부 2처 2청의 정부기관이 정부 세종청사로 이전했다. 2012년 11만여명에 불과하던 세종시 인구는 2020년 현재 35만명을 넘어섰다. 아직도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며 생활하면서 세종시가 베드타운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절반의 성과로 평가받는 이유다.

최근 정치권에서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 문제를 다시 꺼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가균형발전을 명분으로 행정수도 완성에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200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이 문제가 정국의 핵으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사전 여론 조사도 우호적이다. 청와대, 국회 등 서울에 남아 있는 부처의 세종시 이전 찬성이 절반을 넘었다. 국가 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의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할 국민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국민투표에 부치거나 실질적인 행정수도 이전에 영향을 받는 우리 후세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행정수도 이전이 서울 집값을 잡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과천 정부종합청사가 세종시로 이전했지만 과천 집값은 이전 당시만 소폭 떨어졌을 뿐 이내 반등했다. 특히 세종시는 2017년 8.2대책으로 투기과열지역과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이후에도 서울 집값을 비웃듯 시나브로 오르고 있다. 최근 행정수도 이전 논쟁으로 세종시는 전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집값과 전셋값이 뛰고 있다. 국토부 산하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7월 셋째 주 기준 세종시 아파트값은 일주일 만에 0.97% 올랐다. 지난주(1.46%)에 이어 전국에서 가장 상승폭이 컸다. 세종시 전셋값도 지난주 1.36% 오른 데 이어 이번 주 0.99% 상승해 전국에서 전셋값 상승 폭이 가장 컸다.

행정수도 이전은 수도권 과밀해소와 국토 균형발전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은 지역 균형발전의 좋은 본보기다.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DC지만 실리콘밸리는 샌프란시스코에, 에너지와 가스는 텍사스와 알래스카에, 금융과 문화는 뉴욕에, 농업은 네브래스카와 몬태나, 영화 예술은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로스앤젤레스 등 각 지역마다 특화된 자족 기능을 갖춘 지역적 강점이 분명하다. 

한국의 지역균형발전 역시 일부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이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학교, 생활인프라가 갖춰지고 그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자족기능을 갖춘 경쟁력 있는 도시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기업들의 지방 이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민간 기업들이 등 떠밀려 이전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 선택에 따른 투자여야 지속성이 담보될 수 있다. 강요에 의한 이전은 주중에만 지방에 머물고 주말에 서울에 와서 생활하는 또 하나의 베드타운을 만드는 데 그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논의가 오로지 충청권, 세종시에 쏠려 있는 것도 문제다. 세종시 이외에도 전국이 모두 균형발전의 대상이면서 수도권 인구 분산의 대상이어야 한다. 또한 행정수도 이전에 빠른 비효율적인 지출 최소화 등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과 대책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