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 소장

 

우리는 누구나 내 집, 아니면 남의 집에 살고 있다. 일부는 내 집이 있지만 자녀교육이나 직장문제로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전체 대략 2000만 가구 가운데 약 750만 가구가 전월세 임대차 가구다. 다양한 이유로 적지 않은 가구가 남의 집에 산다는 얘기다. 2020년 7월 31일은 우리나라 임대차 시장의 역사적인 날로 기억될 것이다. 이날부터 그동안 30여년간 지속된 전세 단위기간이 2년에서 최장 4년으로 늘어났다. 

전셋값 인상은 직전 계약분의 5%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전월세상한제가 본격 시행됐다. 임대차3법(계약갱신 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은 임대인이 아닌 임차인을 보호하고 전월세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는 백 번 공감하지만 시행 초기 혼란은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점점 심화되는 양상이다. 일부 카페에서는 임대차법 시행을 비켜가려는 꼼수가 난무하고 있다. 집주인 사유제한 침해라고 반발하고 있는 반면에 세입자는 계약 갱신기간 동안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됐지만 2년 혹은 4년 후 전셋값 폭등이 더 걱정이다. 특히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나 교육 때문에 가을 이사철 전셋집을 구하려는 실수요자들이 매물 기근 속에 가격까지 치솟아 가장 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한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이 시행되면서 곳곳에 분쟁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사유 재산 침해라며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임차인 입장에서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계약갱신 청구권을 대부분 행사할 수 있다.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경우는 기껏해야 집주인이나 직계존비속이 실거주하는 경우다. 이때도 반드시 2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 다만 배우자만 홀로 전입신고를 할 경우, 실거주로 인정되지 않는다. 세입자를 내쫓기 위해 악용되는 사례를 막겠다는 취지다. 

이외에도 계약갱신 거절이 가능할 경우는 명백한 임차인의 잘못이 인정되는 경우다. 세입자가 2개월치 이상 월세를 연체할 경우, 세입자가 집주인 동의 없이 해당집을 다시 세 줬을 경우 또한 세입자가 임차한 주택을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파손하는 경우 등이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집주인은 세입자의 계약갱신 청구권을 거부할 수 없다. 하지만 내부 인테리어 등 중대한 파손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분쟁의 소지는 여전하다. 

법시행초기 곳곳에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이 잇따르면서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한국감정원 산하 분쟁조정위원회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서 분쟁 조정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에만 있는 전세제도는 무주택자들에게는 유용한 주거 수단이면서 내 집 마련까지 저축할 시간을 벌어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물론 집주인 입장에서도 주택구입 부담을 줄여주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임대차법 시행으로 국내임대차 시장은 전세에서 월세나 반전세로 빠르게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월세가 늘면 가계의 가처분소득(임의대로 쓸 수 있는 여윳돈)이 줄어서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만큼 무주택 서민의 주거비 부담이 늘어나면 경기에도 부정적이다. 

현재 정부의 정책은 규제를 통해서 민간 임대시장을 통제하려는 방식이다 보니 사유재산 침해 논란과 더불어 임차인들의 주거 불확실성까지 커진 상황이다. 물론 임대차법 시행 초기 혼란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이런 혼란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어느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서울 전셋값은 주간기준 57주, 1년 넘게 올랐다. 내년 서울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은 올해에 절반에 그칠 것으로 추산된다. 이미 예고된 것처럼 새로운 세입자에게는 전월세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2년 혹은 4년 후 전셋값 폭등을 어떻게 잠재울지 미리 대비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임대차 시장은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해야 안정될 수 있다. 무주택서민들이 집값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다양한 공공임대주택을 꾸준히 공급하겠다는 정부정책의 일관된 시그널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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