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송의 이청조(李淸照)는 항우의 사당에서 오강(烏江)이라는 시를 지었다. 그녀는 북송이 멸망하고 남송은 잃어버린 땅을 회복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정황이 안타까워 대성통곡했다.

생당고인걸(生當做人傑), 사역위귀웅(死亦爲鬼雄),

지금사항우(至今思項羽), 불긍과강동(不肯過江東).

살아서 인걸이었고, 죽어서도 영웅이라오.

지금 항우가 그리운 것은, 강동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

 

당의 두목(杜牧)은 오강을 지나다가 제오강정시(題烏江亭詩)를 지었다.

승패불가병가기(勝敗不可兵家期), 포수인치시남아(包羞忍恥是男兒).

강동자제다재준(江東子弟多才俊), 권토중래미가지(捲土重來未可知)?

병가의 승패는 알 수 없으니, 치욕을 참는 것이 진정한 사나이라네.

강동의 자제들 가운데는 준걸이 많은데, 권토중래를 알지 못했는가?

 

이청조는 오강을 건너지 않은 항우를 당당한 사나이라고 했지만, 두목은 재기를 도모하지 않은 항우를 아쉬워했다. BC202년 겨울, 한 번도 지지 않았던 항우가 해하(垓下)에서 유방에게 포위됐다. 소모전이 계속되면 예상치 못한 결과가 초래될 지도 몰랐다. 장량은 초군의 투지를 약화시킬 심리전을 건의했다. 전선의 보루를 지키던 초군은 매일 밤 고향의 노래를 들어야 했다. 초군의 투지는 눈에 띄게 약화됐다. 항우도 사방에서 들리는 고향의 노래를 들었다. 항우에게는 우(虞)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항상 타고 다니던 청백색의 추(騶)라는 명마가 있었다. 그는 비통한 심정을 담아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역발산혜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 시불리혜추불서(時不利兮騶不逝)!

우혜우혜내약하(虞兮虞兮奈若何)?

힘으로는 산을 뽑고, 기개로는 세상을 뒤덮었건만,

시운이 불리하니 추마저 나아갈 수 없구나!

우야! 우야! 너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우도 따라서 노래를 불렀다. 천하를 호령했던 영웅의 눈에서 한 가닥 눈물이 흘렀다. 주변의 부하들은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사기정의(史記正義)에서 인용한 초한춘추(楚漢春秋)에 따르면 당시 우가 부른 노래는 다음과 같았다.

한병이략지(漢兵已略地), 사방초성가(四方楚聲歌).

대왕의기진(大王意氣盡), 천첩하료생(賤妾何聊生)?

한의 군사가 우리 땅을 모두 차지했으니,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리는군요.

대왕께서 의기를 다하셨으면,

천첩이 살아서 무엇을 즐기겠습니까?

노래를 마친 우희는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후세의 사람들은 이 장면을 아쉬워하며 수많은 예술작품에 담았다. 패왕별희는 항우와 우희의 이별장면을 주제로 한 경극이다. 천카이거가 감독하고 장궈룽, 공리, 장펑이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가 재개봉됐다. 다시 보니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희를 이별하는 항우가 아니라 패왕을 잃은 우희의 슬픔이었다. 영화에서 장펑이는 배우로서의 패왕과 무대에서 내려온 자신을 구분했지만, 장궈룽은 언제나 우희였다. 우희는 문혁에서 무너지는 패왕을 보고 절망한다. 승패와 이해를 초월한 진정한 영웅이 그리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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