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 소장

 

긴급재난지원금이 풀리면서 코로나19로 위축된 가계 소비가 늘고 영세 소상공인들이 모처럼 웃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난지원금으로 소고기를 사먹었다는 뉴스에 뭉클하다며 소회를 밝혔다. 다들 살기 어려울 때 국가가 돈을 푸니 잠시나마 내수에 활력이 도는 듯하다. 벌써부터 이 기세를 몰아 정치권에서는 2차, 3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더 나아가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문제는 기본 소득 도입의 필요성이나 재원 마련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정치권은 이슈 선점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기본소득(Basic Income)은 재산이나 일자리와 무관하게 모든 국민에게 동일 액수를 일정하게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찬반 논란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인공지능(AI)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면 실업이 발생하고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한 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취약계층의 일자리 문제 등을 감안한 최소한의 소득 보장 방법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다만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만큼 증세 없이 재원마련이 가능한지, 증세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전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기본 소득에 대한 논의는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실험적으로 연구 검토된 바 있다. 핀란드는 전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했다. 2017년 25~58세 장기 실업자 2000명(전체실업자의 1%)에게 매달 560유로(약 76만원)를 지급했다. 취지는 전체 사회 복지 지출 비용은 줄이고 근로의욕을 높이기 위해 추진됐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취업을 장려하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결과가 나오자 2년 만에 중단됐다. 사실상 기본 소득 실험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2016년 기본소득을 국민투표에 부쳤던 스위스는 모든 성인에게 2500스위스프랑(약 317만원)을 지급하지만 기존 복지제도를 대폭 줄여서 재원을 조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기존 복지제도 혜택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유권자를 중심으로 국민 77%가 반대표를 던지며 사실상 기본소득 도입이 좌절됐다. 기본소득 도입으로 삶의 질이 좋아질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노동 의욕을 떨어뜨려 경제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더 컸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조차도 기본소득의 도입 취지와 재원 등에 대한 문제로 보편적 복지보다는 정말 형편이 어려운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인 복지로 돌아서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국내에서 기본소득이 가능하려면 크게 3가지를 따져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재원 마련이다. 복지는 지속성이 중요하다. 1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중장기 재원 확보가 필수다.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을 기본 복지예산을 없애는 방식으로 할지, 아니면 부자 증세나 부가세 등 일반증세로 할지 등을 검토해야한다. 예를 들어 국민 1인당 매월 60만원을 지급하려면, 연간 360조원이 소요된다.

올해 우리나라 전체 예산 512조원 가운데 보건, 복지와 노동분야 예산 180조원의 2배가 더 필요하다. 모든 복지예산을 없애고 기본소득으로 줘도 모자란다는 의미다. 따라서 기존 복지예산을 없애도 결국 증세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는 증세를 받아드릴 사회적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다.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코로나19로 인한 재정지출 증가로 개정건전성이 위협받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증세도 검토해야한다고 제언했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처럼 타이밍에 문제일뿐 증세 논의는 불가피한 수순이다. 두 번째는 취업 의욕을 고취시키고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재정이 우선적으로 투입돼야 한다. 한정된 재원으로 기본소득처럼 전 국민에게 매월 똑 같은 금액을 지원하는 것보다 취약계층에 대한 직접적인 재정 투입이 소득양극화 해소에는 더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늘어나는 국가빚은 후세의 큰 부담이 되는 만큼 세대 간 갈등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젊은이들의 목소리도 기본소득 논의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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