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 소장

 

미국과 중국 간 2차 무역전쟁이 격화될 조짐이다. 올해 1월 극적으로 미중 무역전쟁 1차 합의, 스몰딜에 성공하면서 잠시 휴전에 돌입했지만 최근 코로나19 책임론을 두고 양국 간 공방전이 치열해지면서 2차 무역전쟁 재발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이번엔 반도체부문이 타깃이다. 최근 미국은 자국기업이 화웨이의 통신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1년 연장한 데 이어 아예 화웨이의 반도체 수급을 원천봉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미국 상무부는 미국 기술을 사용한 기업들도 화웨이에 반도체를 팔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는 미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를 차단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자국기업과 거래하는 제3국이 화웨이와 거래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단기적으로 화웨이의 기술 공세를 꺾으려는 전략이자,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기술국기를 차단하려는 포석이다. 

벌써부터 오는 9월부터 시행되는 미국의 화웨이 추가 제재의 첫 번째 타깃은 대만의 세계 최대 파운드리업체인 TSMC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화웨이는 반도체 생산시설이 없기 때문에 그동안 자사의 휴대폰은 TSMC의 통신용 반도체칩을 공급받아 만들어왔다. 만에 하나 TSMC로부터 통신용칩 공급이 중단된다면 화웨이는 5G 스마트폰 개발과 생산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다급해진 화웨이가 TSMC에 7억 달러 어치 반도체를 긴급 주문했지만 정작 TSMC는 미국의 눈치를 보며 화웨이로부터 신규 수주를 받지 않겠다며 거래중단을 선언했다.

TSMC는 앞서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달러(약 15조원) 달하는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는 등 사실상 미국편에 줄을 섰음을 의미한다. 중국 때리기에 미 의회도 가세하고 있다. 미국 상원은 20일(현지시각) 회계투명성이 부족한 중국기업을 겨냥, 사실상 중국 기업들을 미 증시에서 쫓아내려는 목적이 담긴 ‘외국기업 보유책임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상원에 이어 하원을 통과한 후 대통령의 서명을 거치게 되면, 중국 기업은 미 증시 상장을 통한 기업공개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특히, 이미 미 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 바이두 등 중국 대기업들조차 상장 유지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미국은 화웨이는 시작일 뿐 중국의 ‘제조 2025’의 기반이 되는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로봇 등 첨단 IT기술을 무너뜨리겠다는 계획이다. 중국 제조 2025는 미래 IT를 기반으로 한 첨단산업 중심의 제조업 강국 전환을 목표로 한 시진핑 주석의 핵심 정책이다. 따라서 중국도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화웨이 제재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하면서 강력한 보복 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보복 조치는 애플, 퀄컴, 시스코 등 미국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포함시키거나 보잉 항공기 구매를 취소하는 카드다. 여기에 1차 무역협상 조건인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중단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노골적으로 자기편에 줄서라고 우리기업들을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미국 정부는 한국 기업에 탈중국 공급망 네트워크인(경제 번영 공동체)에 참여하라고 권유한 곳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중국대로 미국과의 장기전에 대비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안정적인 반도체 납품을 요구하고 나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화웨이에 각각 8조원과 5조원 어치 메모리반도체를 팔았다. 이는 지난해 삼성전자 전체 매출의 3%, SK하이닉스 매출의 18%에 해당한다. 결코 놓칠 수 없는 고객이다. 점점 노골적으로 미국편에 서라고 압박하고 있는 미국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최대한 줄타기 이외에 별다른 뾰족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이 미중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으로부터 보복을 당한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이번 미국의 제재가 화웨이와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부문과 네트워크 장비 사업에서는 일부 반사이익을 챙길 수도 있다. 하지만 미·중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수록 장기적으론 우리 기업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동안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던 전략에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또 신냉전에 가까운 미중의 갈등을 슬기롭게 대처할 위기대응 플랜도 새롭게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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