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 소장

 

현 정부 들어 21번째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석 달에 두 번꼴로 부동산대책을 발표했지만 반나절 만에 풍선효과가 나타나는가 하면, 실수요자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이번 정부의 6.17 부동산대책의 핵심은 규제지역을 대폭 확대하고 전세를 낀 갭투자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12.16 대책 발표 이후 안정세를 보이던 서울 집값이 6월 들어 상승세로 돌아선 데다 집값 상승세가 경기, 수원, 인천 등 수도권과 대전, 청주 등 충청도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서둘러 차단에 나선 셈이다. 자칫 휘발성이 큰 서울 집값이 뛸 경우, 이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정책의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김현미 국토해양부 장관은 매번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시중 유동성을 부동산시장 불안요인으로 꼽았지만 단 한 번도 유동성 분산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가수요를 차단하는 데 주력하느라 시중 유동성과 마치 두더지 게임을 하듯 대책 발표 이후 잠시 숨고르기 국면에 들어갔다가 다시 튀어 오르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수십차례에 걸친 대책으로 이미 내성이 생기면서 정부 대책의 효과는 점점 퇴색되고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타이밍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정부 정책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대책에 대한 실수요자들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6.17 대책 관련 무주택자들의 문턱이 높아졌다는 지적에 대해 “국토교통부 차원에서 보완대책을 검토 중”이라며 조만간 수정 대책이 나올 것임을 시사했다. 이번 보완대책에는 투기과열지구에서 3억원을 넘는 아파트를 사면 전세자금 대출을 회수하는 대책의 예외 조항,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추가돼야 한다. 과열지구 내 주택 구입 후 6개월 이내 입주를 의무화하는 것도 자금력이 딸리는 무주자들의 집 구매 문턱을 높이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에 2년 이상 실거주 하지 않을 경우, 분양권을 받지 못하고 현금 청산하겠다는 방안도 논란의 대상이다. 재건축 소유주들 가운데 임대사업자가 많은데, 최소 4년 내지는 최장 8년간 의무 임대기간 중 실거주가 불가능하다. 재건축 후 분양권을 받기 위해선 세입자를 내보내거나 임대사업자 등록을 취소하는 방법 이외에 대안이 없다. 

정부가 임대사업자 등록을 권고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실거주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6.17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반나절 만에 이번 규제에서 제외된 파주, 김포와 천안 등에서 매물이 자취를 감추고 매수 문의가 급증하면서 일부 단지의 경우 매도 호가가 수천만원씩 오르는 등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정책을 만드는 국토해양부가 되새겨 볼 대목이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없다고 하지만 현 정부 3년 동안 21번의 대책을 발표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정부가 부동산 문제의 근본 원인을 잘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실수요자들이 이번대책에 강한 유감을 표시하는 것은 바로 투기과열지구내 주택 구입 후 6개월 이내 입주 의무화 조항이다.

서울 아파트의 중위가격은 이미 9억원을 넘어섰다. 무주택자가 현금을 모아서 서울 집 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수요자들 대부분 목돈이 없을 때 전세 끼고 주택을 매입했다가 나중에 목돈을 모아 입주하는 관행조차 갭투자로 투기꾼 취급한 것은 상당히 유감이다. 정말 현금 부자의 갭투자는 손도 대지 못한 채 실수요자들의 주거 사다리만 제거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1100조원에 달하는 시중 유동자금을 투자와 소비로 유도하는 정책이 선행되지 않는 한 정부의 부동산대책은 100전 백패다. 

이들 시중 유동성은 지금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와 해외 주식 등 위험자산 주변을 기웃거리며 자산가치 버블을 키우고 있다. 정부는 이들 자산의 거품이 꺼지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수 있다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지금부터 이들 자산을 다양한 절세 금융상품과 소비로 유도하는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부동산대책이 아닌 범정부 차원의 유동성 분산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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