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곳간] ‘불려볼까’ 조선의 특별한 쌀 재테크
[문화곳간] ‘불려볼까’ 조선의 특별한 쌀 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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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2020.6.3
ⓒ천지일보 2020.6.3

봄철 빌려주고 가을 회수
이자만 50%, 사채 수준

재산 불리는 서적도 나와
성리학을 뿌리 채 흔들어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고금리 재테크’도 이젠 옛말이 됐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예금 상품의 금리도 낮아질 거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결혼 전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서 서울에 집 한 채 사는 것은 어느새 꿈이 됐다. 이 때문에 재테크를 고민하는 이가 점점 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뿐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재테크가 있었다.

◆사채수준인 장리 성행

유교국가인 조선은 신분 격차가 심했다. 농업 국가였고 조선 후기까지 상공업은 천시됐다. 이런 환경에서 돈을 불린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겠지만 조선에서도 재테크가 이뤄졌다. 오늘날돈과 같은 개념인 ‘쌀’로 말이다. 여기에는 ‘장리(長利)’가 적용됐다.

즉 이자를 받는 것이었는데 쌀을 돈으로 놓고 이자를 부쳐서 쌀을 불리는 방식이다. 보통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 추수 때 빌려준 곡식을 회수하는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평균 이자율이 무려 50%나 됐다. 거의 사채 수준이다. 결국 쌀 두가마를 빌리면 세 가마를 갚아야 하는 꼴이다. 농민 입장에서는 보릿고개를 겨우 넘기고 가을 추수 때 원금과 이자를 갚고 나면 그해 먹을 게 거의 없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이자제한법’을 뒀다. 세종은 연 10%, 월 3%를 넘지 못하게 했고, 영조는 돈이나 곡식 구분 없이 연 20%를 넘지 못하게 제한했다.

토지와 노비를 통한 재산 증식도 있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조선 양반가의 치산(治産)과 가계경영’ 자료에 보면 연동(蓮洞) 해남 윤씨 집안은 특정 지역의 토지를 집중해서 매입했다. 재산 상속 시에도 지역 단위로 물려줘 재산을 지켜 나갔다.

◆최초의 재테크 서적

조선시대에는 재테크 서적도 있었다. 조선 영조 때 명문가의 서자였던 이재운(1721~1782)이 쓴 ‘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이다. 이 책에는 조선시대 일반 경제관념을 뒤집는 내용이 담겼다. 책의 첫머리부터 “청빈(淸貧)이나 안빈 낙도(安貧樂道)를 따르는 삶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벼슬보다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관직에 오르는 것보다 중한 것이 돈을 버는 것”이라면서 당시의 성리학을 뿌리째 흔들었다. 농업국가에서 상업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재산을 불리는 법과 부자 유형까지 기술했다. 책에는 최고의 재테크 방법으로 ‘치산’을 잘해 재산을 불리는 방법을 꼽았다. 아끼고 절약하는 법, 변화를 일으켜 형통하는 방법 등도 기록됐다.

조선 후기 대표 실학자 서유구(1764~1845)의 실용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 중 ‘예규지(倪圭志)’를 보면 재산증식에 대한 다양한 조언이 담겨있다. 예규라는 것은 ‘백규(白圭)의 상술을 곁눈질한다(倪)’는 뜻으로, 백규는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때 살았다. 그는 시세차익을 이용해 많은 재물을 모은 사람이다. 예규지에 보면 ‘절약’ ‘수입을 고려해 지출하기’ 등 경제생활의 기본적인 내용이 가장 먼저 담겼다. 이어 ‘재산증식’ 방법으로 부동산 매매를 소개했다. 이 책은 고리대금을 피하고 과다한 금액을 빌려주지 말고, 원망 없이 해결하는 처세술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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