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곳간] “더위, 이기자” 그 옛날 8가지 피서법은? ⓒ천지일보 2020.6.19
ⓒ천지일보 2020.6.19

임금, 궁궐 시원한 곳 찾아

양반은 계곡서 ‘탁족’ 즐겨

죄수들 물도 자주 갈아 줘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덥다’는 말이 툭 튀어나오는 6월이다. 여름 초입도 이러한데 한여름은 어떻겠는가. 밤사이 열기가 식지 못해 열대야에 버금가는 더위가 나타나는 지역도 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트는 건 이젠 일상이 됐다. 그렇다면 선풍기조차 없던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여름 더위를 이겨낸 걸까.

◆궁 밖 보단 궁내서 즐겨

조선시대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시기는 음력 5월과 6월이다. 양력으로 보자면 6월부터 8월 초 사이다. 지금이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절인 것이다. 오늘날 같으면 국내외 이곳저곳 여행을 떠나 더위를 식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겠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임금이라도 궁 밖으로 피서를 한번 떠나는 게 어려웠다. 한번 행차를 하면 수많은 군사와 신하가 따르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결국 왕릉 참배가 아니고서야 궁 밖 행차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궁궐 안의 경복궁 경회루 등 시원한 곳을 찾아 피서를 즐겼다. 음식을 통해서도 더위를 식혔다. 임금의 수라상에는 수박과 참외 등이 올려 졌는데, 서빙고에서 꺼내온 얼음에 넣어 차갑게 식힌 것이었다.

양반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더위를 피했다. 부유한 양반은 개인 빙고를 소유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정약용은 여름 더위를 물리치는 8가지 방법인 ‘소서팔사(消暑八事)’를 기록했다. 소서팔사는 나무 아래에서 바둑 두기, 연못에 가서 연꽃 구경하기,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밑에서 그네타기,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 오는 날에 시 짓기, 빈 정자에서 투호 놀이, 마지막으로 달밤에 물가에서 발 씻기 등의 내용이다.

조선 후기 문인인 강세황이 그린 ‘송도기행첩’ 중 ‘태종대’를 보면 위로 괴기한 암석들 아래에서 양반들이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단오(음력 5월 5일) 무렵에는 부채를 사용했다.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부채는 귀중품이었고, 왕이 단오에 하사해 ‘단오선’이라고도 불렀다.

◆정수리 부분 동전 크기로 면도

그런가 하면 머리숱이 많은 사람은 여름철 상투를 트고 있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럴 때 한 것이 ‘배코치기’다. 배코란 상투를 틀기 위해 머리카락을 깎아낸 자리를 말한다. 보통 ‘신체발부 수지부모’라고 해서 조선시대에는 머리를 자르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겠다. 하지만 정수리 부분을 동전 크기 정도로 면도해 상투 모양이 예쁘게 나오도록 하기도 했다. 주로 일반 백성 사이에서 이뤄졌고 양반이나 왕실에서는 행하지 않았다.

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에게는 물을 자주 갈아줬다. 세종실록에 보면 “내가 전에는 무더위를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몇 해 전부터 더위가 들기 시작하여 손으로 물을 가지고 놀았더니 더위 기운이 저절로 풀렸다. 이로 생각하건대, 죄수가 옥에 있으면, 더위가 들기 쉬워서 혹은 생명을 잃는 수가 있으니, 참으로 불쌍한 일이다. 더울 때를 당하거든 동이(盆)에 물을 담아 옥중에 놓고 자주 물을 갈아서, 죄수로 하여금 손을 씻게 하여, 더위가 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하였다. 죄수가 더위를 먹지 않게 하려는 세종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대목이다. 이처럼 무더운 계절이 찾아올 때는 다양한 방법으로 더위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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