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곳간] 발생하면 국가 비상, 조선시대 전염병 대처법은?
[문화곳간] 발생하면 국가 비상, 조선시대 전염병 대처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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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곳간 ⓒ천지일보 2020.2.24
문화곳간 ⓒ천지일보 2020.2.24

‘삼국사기’ 최초 전염병 기록

조선, 국가 차원으로 대책 세워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사스, 메르스 등 전염병이 한차례 왔다 갔지만, 이번 코로나19는 온 인류가 처음 겪는 전염병이어서 철저한 위생관리와 예방이 중요하다. 코로나19는 메르스와 달리 전염성이 강하지만 사망률은 낮은 게 특징이다. 중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코로나19. 의학이 지금보다 덜 발달했던 과거에도 전염병이 한번 발생하면 국가적으로 비상사태였다.

◆실록 속 ‘전염병’ 천여건 이상

우리나라 최초의 전염병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 기록에 따르면. 백제에서는 온조왕 때에 기역(饑疫)이 있었다. 구수왕·근구수왕 당시에 ‘대역(大疫)’이 유행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전염병, 역병, 역질 등에 대한 기록은 1000여건 이상 기록돼 있다.

세종실록(세종 2년 3월 28일)에 따르면 “서울과 지방에 전염병이 성하게 유행한다고 하니, 소재지의 관리로 하여금 성의를 다하여 치료하여 죽는 자가 나지 않도록 하라”고 기록돼 있다.

숙종 25년(1699년)에 전국적으로 전염성 열병인 ‘여역(癘疫)’이 돌았다. 당시 초기대응이 적절치 못했는데 이로 인해 사망자가 증가했다. 서울에서만 4천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전국적 사망자는 무려 25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조선 인구가 6백만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전체 인구의 4%가 사망한 사건이었다.

역사에 기록되는 가장 영향력 큰 전염병은 무엇일까. 보통 ‘천연두’를 생각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마’라고 불릴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전염병이 있었으니 중국을 거쳐 1821년 조선으로 들어온 ‘콜레라’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이 병에 걸린 사람 열 명 중 한두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콜레라에 감염되면 2~5일 동안 상당히 심한 구토나 설사를 일으킨다. 오늘날로 치면, 콜레라 치료를 제때 못 받으면 사망률은 50~60% 정도이며 어린이와 노인의 경우에는 90%에 이른다. 과거에는 이보다 더욱 사망률이 높았다.

◆전염병에 대한 다양한 대처법

전염병은 국가적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야 했다. 임금들은 전염병 환자 구제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세종실록(세종 14년 4월 21일자)에 따르면, “민간에 전염병이 발생하거든 구제하여 치료해 주라는 조항을 여러 번 법으로 세웠다. 하지만 각 고을의 수령들이 하교의 취지를 살피지 않아 금년은 전염병이 더욱 심하건만 구료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일찍이 내린 각 년의 조항(條項)을 상고하여 구료해 살리도록 마음을 쓰라”고 기록돼 있다.

다양한 서적도 나왔다. 1550년(명종 5)에 이르자 말라리아가 크게 돌고 황달이 심해서 정부는 ‘황달학질치료방’을 만들어 배포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도 전염병이 돌았는데 광해군 때 새로운 ‘벽온방(辟瘟方)’과 ‘벽온신방(辟瘟新方)’이 발행됐다. 효종 때에는 ‘벽온신방(辟瘟新方)’이 나오게 됐다.

또한 전염병이 많이 돌 때는 ‘여제(癘祭, 나라에서 역질이 돌때 여귀에게 지내던 제사)’를 올렸다. 당시에는 계절이나 기후의 변화 때문에 전염병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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