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개종 피해 당사자‧가족 호소문-16상] “경찰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가족… 섬에 갇혀 개종교육”
[강제개종 피해 당사자‧가족 호소문-16상] “경찰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가족… 섬에 갇혀 개종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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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개종’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우리사회에 이슈화 된 것은 2008년 진용식 목사가 개종을 목적으로 정백향씨를 정신병원에 감금한 사건으로 법원으로부터 철퇴를 맞으면서부터다.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소속으로 이단상담소장을 맡고 있었던 진 목사는 정씨의 종교를 포함해 기성교회에서 소위 ‘이단’으로 규정된 곳에 출석하는 신도들을 대상으로 강제개종을 진행했고, 이후 강제개종 사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초기 목사들이 직접 나서서 강제개종을 진행했지만 현재는 그 수법이 달라졌다. 먼저 강제개종 목사들은 표적이 되는 신도의 가족에게 먼저 신도가 다니는 교단에 대한 비방으로 공포감과 불안감을 자극한다. 그리고 이들은 사랑하는 자녀나 아내, 부모가 이단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납치‧감금‧폭력 등 불법 행위로 점철된 개종 프로그램은 가족을 살리기 위한 ‘지푸라기’가 된다. 이같은 이간질에 21세기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는 대한민국에서 강제개종은 아직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본지는 강제개종으로 인해 인권이 침해되고 억압을 받으면서도 하소연 할 곳조차 없는 피해자들의 눈물 섞인 호소를 연재하고자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제부도-안산-장흥 세 차례 걸쳐 감금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개종을 시키기 위한 강제성과 잔인함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납치는 물론 섬에 가두고, 각종 협박을 동원해 결국은 자칭 이단감별사인 개종 목사가 운영하는 개종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한다. 특히 개종 프로그램을 거부하는 피해자에게 가학행위를 하는 과정에는 개종 목사 측은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방법을 알려줄 뿐이다. 자녀나 누이가 이단에 빠졌다는 말을 듣고 불안감과 공포에 휩싸인 가족들은 개종을 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가학행위도 정당하다고 여긴다. 이렇게 편견에 휩싸인 가족의 강제개종 시도로 56일, 거의 두 달이 다 되는 기간 납치와 감금 속에서 인권유린을 당한 장은영(가명)씨도 이 강제개종의 피해자다. 정서적인 학대와 감금 속에서 건강까지 악화됐었다는 장씨의 호소문을 상하에 걸쳐 싣는다.

저는 광주시에 사는 한 여성입니다.

 

제 주변 사람들이 강제개종교육을 갔다왔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가족들에게 신앙을 인정받던 제가 이런 일을 겪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신앙적인 부분에서 가족들과 다툼이 없었는데 개종목사가 저희 가족에게 개입한 후로 가족들은 달라졌습니다.

◆ 2016년 12월 31일 납치와 감금

2016년 12월 31일, 연말을 맞아 본가에 도착하니 “사랑하는 우리 딸 00아~”라며 평소 어머니가 하지 않는 말씀과 행동을 하셨습니다. 외식을 하자는 큰오빠의 제안으로 밖으로 나오게 되었고, 평소와 너무 다른 태도에 혹시 몰라 저는 차량번호를 확인했는데 번호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저는 불안한 마음에 내리려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작은오빠와 처음 보는 남자(박00)가 나타나 저를 강제로 차에 태웠습니다.

제가 “팔이 너무 아파요. 대체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라고 울며 애원하니 가족들은 여행가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 수 없고 낯선 성인 남자가 제 팔을 잡고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

공포감과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이동 중 가족들은 제게 “너 지금 세뇌 당한 거야” “"너는 개종교육을 통해서 정신을 개조시켜야 돼”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멀쩡하다고 말하면 할수록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가족들은 저를 더욱 정신이상자로 몰아갔습니다.

◆썰물 때만 길이 열리는 섬 ‘제부도’ 펜션의 악몽

펜션에 도착하니 미리 준비된 식량이 있었고, 펜션에서의 생활 동안 큰오빠와 박00. 엄마와 막내가 번갈아 가며 저를 감시했고, 화장실도 안에서 잠글 수 없게 개조돼 있었습니다.

감금 된 지 이틀. 강제로 동의서를 작성한 후, 안산모교회 진모 목사와 주모씨는 여집사와 함께 와서 개종교육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지금 감금돼 있으니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다”라고 제 의사를 밝혔으나 주모씨는 “내가 감금한 거 아니야. 네 가족이 감금하고 있는 거야. 네 가족들이 원해서 이렇게 하는거야”라며 가족들에게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교육 중에는 제가 질문을 하자 주씨는 “나는 사람이라서 성경에 대해 전부 알지 못한다”며 “"전부 안다고 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다 알고 계시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너가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답 해주지 못한다”라며 궁색한 변명과 인신 공격을 했습니다.

교육 내내 이어지는 욕설과 인신공격에 화가 나고 억울해서 벽에 주먹을 수차례 멍이 들 정도로 내리쳤습니다. 손이라도 부러져 병원에 실려 가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이 상황에도 가족과 개종목사는 밥을 먹으며 어떻게 개종교육을 시킬지 회의를 했습니다.

다음 날은 개종된 여 집사가 와서 4~5시간 동안 교육을 했습니다.

“00씨 보니까 교회에서 즐겁게 신앙했던 생활이 떠올라~” “엄청 열심히 했었는데 혹시 00이 아직 있니?” “교회 사람들 정말 좋았는데 연락을 안 받아서 못 만나~” 등등의 말로 제 마음을 열기 위해 배려하는 척 위선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2017년 1월 8일 1차 탈출 시도

막내에게 “꼭 필요한 게 있는데 나랑 같이 편의점 한번 갔다 오자”고 하니 “내 손을 놓으면 안 돼”라고 엄마에게 교육받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편의점 도착 후, 저는 직원에게 “핸드폰 한번 빌려주시면 안 돼요?”라며 “제가 지금 감금되다 나왔는데 112에 전화 좀 하게 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직원은 파출소의 위치를 알려줬습니다. 파출소로 가는 내내 큰오빠가 찾아올까 하는 공포감에 승용차만 지나가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경찰관에게 제 사정을 이야기하고 육지로 보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파출소 내에서도 큰오빠가 찾아올까 두려운 마음에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경찰관은 ‘조사관이 와야 도와줄 수 있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잠시 후 도착한 조사관은 “00씨 이야기만 들을 수 없고, 가족들 이야기도 들어봐야 해요” “가족들의 조서도 받아야 하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불안한 마음에 나가겠다고 하니 “사건화가 돼서 구체적인 경위를 이야기해주셔야 나갈 수 있습니다”라며 문 앞을 막았습니다.

도착한 가족을 보니 너무 무서워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지금 교회에 가려는 거예요! 막아야 해요”라고 하는 큰오빠의 말에 경찰관 네 명이 “가만히 있으세요!” 라며 제 어깨와 팔을 잡고 제압했습니다.

상황 정리 후 “00씨가 교육 안 받고 싶다고 하는데 강제적으로 해서는 안돼요. 오늘 당장 광주로 내려가세요”라는 경찰의 말에 가족들은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불안하긴 했지만 가족들을 믿고 펜션으로 돌아갔습니다. 돌아온 후, 엄마는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오늘은 못 내려갈 것 같다. 내일 가자”라고 약속을 받고 하루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됐어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가지 않았고, 저는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그 어떤 문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성을 잃으며 화내는 모습에 어머니는 졸도하셨고, 기억을 잃은 듯한 행동을 보이셨습니다.

제가 교육을 받겠다고 하니 정신이 돌아오시는 이상한 상황이었습니다.

2주의 교육이 빨리 끝나기만 기도하며 건성으로 대답만 했습니다. 그런데 주씨는 더 교육을 받아야 하니 안산모교회로 옮기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섬이 아닌 원룸으로 옮기면 도망칠 기회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7년 1월 11일 안산모교회서 2차 탈출 시도

안산으로 가기로 한 날 아침, 가족들이 방심한 사이 큰오빠의 핸드폰을 들고 112에 감금된 상황을 신고했지만 곧 큰오빠에게 발각됐습니다.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저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했습니다.

안 가려고 몸부림쳤지만 성인 남자 두 명한테 이길 수 없다 보니 눈이 쌓인 길을 맨발로 끌려갔습니다. 그 후 어머니를 통해 막내를 시켜 장난전화였다고 하니 경찰관은 아무런 의심 없이 돌아갔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저를 차 안에 가둬 놓고 가족들은 짐을 챔겨 안산모교회 앞 원룸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내리자마자 “살려주세요!”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박00이 바로 저를 제압해서 차 안으로 제 머리를 밀어 넣었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포기하자고 했지만 큰오빠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나는 끝까지 가야겠어”라고 소리를 지르며 “싸가지 없는 x. 미친x, 개또라이 같은 x”라며 쌍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모에게서 “너희 숙부에게 전화해봐라. 너희 숙부가 장흥 산골짜기에 살고 있는데 거기가 적합할 것 같다”라며 전화가 왔습니다.

그렇게 저는 안산에서 전라남도 장흥까지 이동해 다시 감금됐습니다.

(하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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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선 2020-05-28 20:44:30
강제개종이라니 이건 아니지요~

유형순 2020-05-28 18:14:13
가족과의 믿음이 중요하고 또한 소통여부가 더욱 중요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