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탕

김여정(1933 ~  )

노인 혼자 먹는 한 끼 밥으로 누룽지탕이 속 편한 건강식이다

약한 불에 서서히 끓여지는 동안 독거(獨居)의 쓰디 쓴 외로움도 작 녹아들어
인생말년 여유의 고소한 맛도 서서히 즐기게 되고

홀로 누룽지탕을 즐기시던 독거의 어머니 심정도 알게 되고

누룽지탕 앞에 놓은 저녁밥상은 무탈한 하루에 대한 감사 기도의 제단(祭壇)이 되고


[시평]

노년에 들어 장성한 자손들은 모두 가정을 이루어 나가서 살고, 배우자까지 떠나간, 그래서 이제 외로이 혼자 살아야 하는 그 쓸쓸함을 견뎌야만 하는 노인들. 이런 노인들과 노인들이 아침저녁으로 즐겨 끓여먹는 누룽지탕은 왠지 그 조합이 그럴듯하다. 약한 불에 후르르 끓여서 우물우물 마시듯, 또는 씹는 듯 마는 듯, 먹는 누룽지탕, 어쩐지 노년의 그 단순한 삶을 지닌 노인들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그런가, 누룽지탕은 노인들에게 인기가 좋은 품목 중의 하나이다. 약한 불에 누룽지가 서서히 끓여지는 동안, 혼자 살아야 하는 독거(獨居)의 쓰디 쓴 외로움도 자작자작 녹아들고, 그런가 하면, 인생말년의 여유와, 그 여유에서 비롯되는 누룽지 마냥 고소한 맛도 서서히 즐길 수 있게 되는 누룽지탕.

이렇듯 누룽지탕을 즐기다 보면, 이제는 잊은 둣한, 그러나 마음 속 언제고 남아 있던 어머니에 대한 생각도 슬며시 떠오른다. 어머니도 누룽지탕을 즐기셨는데, 지금의 나 마냥 독거의 심경 속, 스스로를 그 삶을 즐기셨을 것이리라,

어머니 그 연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어머니의 그 마음 조금은 알 것만 같구나, 노년에 들어 만난, 그래서 왠지 친근함이 자작자작 녹아드는 구수한 누룽지탕과 함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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