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詩] 등대 - 홍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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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홍하영

제 자리에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길이 되었다

너 역시
내 옆에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길이 열렸다.

 

[시평]

복사꽃 오얏꽃은 ‘나 여기 있으니 많이 오세요’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복사꽃 오얏꽃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모여들고, 그래서 그 나무 아래에는 자연스럽게 길이 만들어진다(桃梨無言 下自成蹊)는 옛말이 있다. 이 말은 덕(德)이 있는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사람이 따른다는 비유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 ‘이장군열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밤바다 칠흑의 바다를 향해 불빛을 비추는 등대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 그 불빛에 의하여 배들이 다니는 길이 열리고, 배들은 칠흑의 바다를 보다 안전하게 항해를 할 수가 있다. 이 등대 같은 사람, 자신은 가만히 서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환하게 길을 열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며, 그 사람 다만 가만히만 있을 뿐인데, 스스로 환하게 길이 열리게 하는 그 사람. 그 사람 어둠의 바다에 길을 열어주는 등대 같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 사람, 그 옛날 한무제(漢武帝)때 힘이 세고 몸이 날래서 한비장군(漢飛將軍)이라고 불리던, 그러나 말이 없어 늘 과묵하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던 그 사람, 이광(李廣)과 같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복사꽃 오얏꽃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아래 저절로 길이 만들어지는 그런 사람이 오늘 더욱 그리워진다. 자기 피알(PR)의 시대임을 공공연히 천명하며, 온갖 매체를 통하여 자기선전과 자신의 공을 드러내지 못하면, 현대적 조류에서 밀려나야 하는, 마치 바보와 같이 취급되고 있는 이 세태 속, 그런 사람이 더욱 소중하고 그립지 않을 수 없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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