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靈柩) 앞에서

김원길(1942 ~ )

이젠 턱도 혀도 굳었으니

사랑이여,

배고픔도 더는 그댈

성가시게 하진 못하겠지.

 

꺼이꺼이

산 사람은 길게 울다가

눈물 닦고 돌아 앉아

밥을 먹는다.

 

[시평]

죽으면 모든 것이 정지된다, 그래서 부드럽게 움직이던 몸의 각 부분도 이내 멈춰버려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부드러움은 삶을 의미하고, 딱딱함은 죽음을 의미한다. 사랑을 한다거나, 누고를 미워한다거나, 음악을 듣는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하는 모든 행위는 궁극적으로 부드러움이 된다. 그래서 노자(老子)가 그랬던가. 부드러움이 딱딱함을 이긴다고. 딱딱함이 강한 듯이 보이지만, 궁극에 가서 살아남는 것은 부드러움이라고.

이제 죽었으니, 그래서 부드러움 모두 잃었으니, 사랑도 못하고 또 배고픔도, 어떤 서러움도 아픔도 모두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었다. 사랑도 못하고, 서러움도, 아픔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으니, 삶의 부드러움 이제 모두 잃어버린 것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삶의 부드러움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을 생각하며, 그 막막함을 생각하며, 그 안타까움을 생각하며 꺼이꺼이 길게 울다가, 눈물 닦고 돌아앉아서는, 꾸역꾸역 밥을 먹는다. 그 입은, 그 몸은 아직 부드러움임으로, 아, 아 살아있는 부드러움임으로. 꺼이꺼이 울다가, 돌아앉아서는, 꾸역꾸역 밥을 먹어야 하는 이 아이러니, 삶은 어차피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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