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분열조장(分裂助長)
[고전 속 정치이야기] 분열조장(分裂助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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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고대 전제정치 권력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군주와 신하 사이의 불신과 시기, 신하들끼리의 갈등과 경계심이다. 불신과 시기심으로 상하가 서로 이해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애초부터 투명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속이려고 하기 때문에 어떻게 숨은 의도와 함정을 포착하느냐가 승리의 관건이다. 상대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부러 혼란을 더욱 심화시키기도 한다. 불신과 시기심이 만연된 전제정치체제에서는 오히려 혼란을 조성하는 것이 쉽다. 새로운 혼란이 조성되면 평소에 정보소통이 결여된 정적들은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정치적 야심가들은 고의로 혼란을 조성해 이득과 승리를 얻는 유리한 조건을 창조해왔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에 이탈리아 반도는 여러 개의 도시국가로 분열됐다. 이들이 일시적으로 세력균형을 이루며 공존을 모색하던 이탈리아 반도는 마키아벨리의 시대에 이르러 혼전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중해 일대에서 무역을 통해 부강함을 이룬 베네치아와 피렌체도 적극적으로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피사를 다스리려면 성채가 필요하고, 피스토이아를 다스리려면 파벌을 조성해야 한다’는 말이 유행했다. 피사는 피렌체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항구도시였다. 이러한 피사(피스토피아)가 피렌체에게 등을 돌렸다. 피렌체로서는 지중해로 진출할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피사를 굴복시켜야 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일치단결해 항거하는 파시를 정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피스토이아는 피렌체의 속국으로 서북쪽에 있으면서 볼로냐, 베네치아, 밀라노에 이르는 내륙교통의 중심지였지만, 극심한 파벌다툼으로 정치적 불안이 계속됐다. 속국을 통치하려면 당파싸움을 부추겨 본국에 등을 돌릴 생각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좋다는 피렌체의 부추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결국 피렌체도 피스토이아의 분열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말았다. 피스토피아의 분열이 피렌체로 옮겨진 탓이었다.

각국이 분열돼 세력의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는 모두가 군대를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전략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균형이 무너져 강국이 약국을 병탄하기 시작한 상황에서는 적절한 대책이 될 수 없었다. 약한 세력은 생존을 위해 다른 나라를 끌어들여 강한 정적을 격파하려고 했으며, 결과적으로 두 파가 모두 약해져 싸움에 개입한 강국이 어부지리를 얻게 된다. 따라서 약육강식이 시작된 상황에서 속국을 지배하기 위해 분열책을 쓰는 것은 위험했다. 베네치아는 자국이 지배하는 모든 도시에 교황파와 황제파라는 두 개의 파벌을 육성해 유혈충돌이 벌어지지 않는 범위에서 대립을 부채질해왔다. 서로의 정쟁에 열중해 본국인 베네치아에 대항하지 못하도록 해왔지만 결국 이러한 분열책은 실패하고 말았다. 1509년, 베네치아가 프랑스, 로마, 에스파니아, 독일 등의 연합군에게 패하자 일부 도시가 반기를 들고 독립했다.

유동적인 정세에서 분열책은 통치국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국력을 지니고 있을 때 가능하다. 부근에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국력을 지닌 다수의 나라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분열책은 독수리에게 토끼를 맡기는 것과 같다. 지배국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국력을 지녔더라도 속국의 야심가들은 ‘독립’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국민들을 결집시키고,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내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지배국의 통치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따라서 혼란을 조성하는 것은 강자이건 약자이건 적절한 상황을 고려한 후에 사용해야 한다. 이간질을 활용한 책략은 완전한 승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특수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일시적인 계책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국제간에 적용되는 이러한 현상은 국내의 당쟁에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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