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이념모순(理念矛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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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중국은 그들의 전통문화를 설명할 때 유가, 불교, 도가 등 3가지 종교를 종지로 삼는다. 묵가에 대해서는 소홀하다. 우리는 더욱 심하다. 야스퍼스는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기축시대(Axial Age)’라는 말을 사용했다. BC10세기를 상한선으로 인류문명에 ‘창조적 소수’가 등장해 삶을 위한 종교적인 ‘초월적 돌파’를 이루었다는 주장이다. 그리스, 인도, 중국 등 고대 문명의 중심지역과 치열한 전쟁이 발발했던 중동에서 위대한 선각자들이 나타났다. 무력, 민족주의, 계급질서와 같은 기존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인간의 존엄성, 관용, 평화, 사랑과 같은 보편적 가치관을 제시했다. 야스퍼스는 인류문명이 ‘기축시대’에서 크게 진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기축시대는 춘추전국시대였다. 공자는 기축시대를 열었고, 묵자는 그 정신을 실천했다. 이 시기 묵가는 유가를 압도하는 ‘현학(顯學)’이었다. 생전의 묵자는 ‘북방의 현성인’이었고, 사후의 명예는 북방에 넘쳤고, 의는 초월(楚越)을 진동시켰다. 어느 순간 찬란한 명성을 잃었지만 묵자는 세상에 소문난 4대 성인에 못지않은 성인이었다.

유가의 아성인 맹자마저 ‘성왕이 제도를 정하지 않으니 제후들은 방자해지고, 처사들은 함부로 자기 주장을 내세운다. 양주(楊朱)와 묵적의 말이 천하에 넘치니, 천하의 언론이 그들에게 기운다. 양주는 자기만 위해 군주를 무시하고, 묵적은 누구나 똑같이 사랑하여 부모도 무시한다. 짐승과 같다. … 그들의 도가 사라져야 공자의 도가 드러난다. 괴이한 학설로 백성들을 속여 인의를 막으니, 인의가 막히면 짐승이 사람을 잡아먹다가 결국 사람들끼리 잡아먹게 된다. 나는 선성의 도를 지키기 위해 양주와 묵적의 방자하고 괴이한 주장을 막을 것이다. … 양주와 묵적은 성인만이 막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맹자가 이토록 강력하게 성토했다면 묵가는 유가를 위협할 정도였을 것이다.

법가의 집대성자 한비도 ‘지금 세상의 현학은 유가와 묵가다. 공자 사후 자장(子張), 자사(子思), 안연(顔淵), 맹가(孟軻), 칠조(漆雕), 중량(仲良), 손씨(孫氏), 악정(樂正) 등 8개의 유학이 나타났다. 묵적 사후 상리(相里), 상부(相夫), 등릉(鄧陵) 등 3개의 묵학이 나타났다. 이들은 각자 정통이라고 주장했다. 공구와 묵적은 죽었으니 누가 정통을 가릴 수 있는가? … 증거도 없이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하면 어리석(愚)고, 확정적이지 않는 근거를 내세우면 속임수(誣)다. … 군주는 어리석고 황당한 학문과 잡스럽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아낀다. 묵가는 장례에서 만든 두께 3치인 오동나무관을 사용하고, 상복은 3달만 입는다. 그런데도 군주들은 검소하다고 예우한다. 유가는 성대한 장례로 살림을 탕진한다. 3년 동안 상복을 입어 피골이 상접하고 지팡이를 짚을 정도로 몸이 상한다. 그런데도 군주들은 효도가 지극하다고 예우한다. 묵자의 검소한 장례가 옳다면, 유가의 지나친 장례가 잘못이다. 유가의 효가 옳다면, 묵자의 각박한 장례는 잘못이다. … 유가인 칠조학파는 창칼 앞에서도 안색을 바꾸거나 눈을 돌리지 않지만, 무례하다고 지적하면 노예에게도 몸을 굽힌다. 자기의 행동이 떳떳하다고 생각하면 제후에게도 대든다. 군주는 이들을 올곧다고 예우한다. 묵가인 송영자(宋榮子)는 남과 절대로 싸우지 않는다. 원수도 용서하고, 옥에 갇히거나 모욕을 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군주는 이들을 너그럽다고 예우한다. 양자는 모순이다. 어리석고 황당하거나 남을 속이고 잡스러운 학문이 다투게 된 이유는 군주가 그들의 주장을 경청했기 때문이다. 얼음과 숯불은 한 그릇에서 공존할 수 없고, 추위와 더위가 동시에 닥칠 수 없다. 모순된 주장을 양립시켜서는 세상을 다스리지 못한다. 군주가 모순인 이론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있으니, 어떻게 어지럽지 않겠는가?’라고 유가와 묵자를 동시에 공격했다. 그러나 그의 공격은 비난이 아니라 칭찬으로 느껴진다. 진보와 보수도 모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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