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지역 고구려 답사] 잃어버린 ‘고구려성’ 정양산성 동강 절벽에 축조한 장엄한 성벽 (1)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왕검성’이라고 했다. 왕검(王儉)은 우리 역사에서 고조선 임금인 단군의 칭호다. 강원도 영월 왕검성은 그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이 성은 <동국여지승람>에서 ‘정양산성(正陽山城)’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왜 왕검성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불려 온 것일까.

우선 왕검성의 역사를 상고해 보자.

‘왕험성(王險城. 이하 왕검성)’에 대해 <삼국유사> 고조선 조에는 “중국 기록인 <위서(魏書)>를 인용, 단군왕검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했다”고 하면서, 또 <고기(古記)>를 인용 “단군왕검이 평양성에 도읍했다”고 하였다.

중국 사서인 <사기(史記)> 조선전에도 왕검성이 나온다. “공손수(公孫遂)의 군대와 좌장군의 군대가 왕검성을 공격하자 조선의 신하들이 투항하고 조선 왕 우거(右渠)가 피살되었으나, 왕검성은 성기(成己)가 일시나마 완강히 항거했다”고 하였다.

<삼국사기> 권17 고구려 동천왕 21년조에는 “평양성은 본래 선인 왕검이 살던 곳이다. 또는 왕의 도읍을 왕험이라 한다(平壤城 本仙 人王儉之宅也 或云 王之都王險)”라고 기록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근거로 평양 지방에 있었다는 견해가 있으며 <사기색은(史記索隱)>에는 “요동군(遼東郡) 험독현(險瀆縣)은 조선 왕의 옛 도읍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평양성보다 훨씬 남쪽 땅인 영월 왕검성은 도대체 왜 이렇게 불린 것일까.

영월은 고구려 땅이었다. <여지승람> 건치 연혁조에 보면 “본래 고구려의 내생군(奈生郡)이다. 신라가 내성군(奈城郡)으로 고쳤다. 고려는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원주의 속현으로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지역과 멀지 않은 충북 제천의 고구려 지명은 내제(奈提) 혹은 내토(奈吐)라고 기록하고 있다. 왜 이 일대에서 ‘奈’라는 이름을 붙인 지역이 많이 등장하는 것인가.

‘奈’의 언어학적 해석은 ‘어찌 내’이다. 그 첫째 자 독음 ‘어’를 차용하여 ‘奈’라고 기록한 것이다. 이 글자에 영월이나 제천 등 고대사의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이다. 고대 고구려, 백제에서는 임금을 지칭하여 ‘어라가(於羅睱)’ 혹은 ‘어라하’라고 불렀다. 내생은 ‘어라 생’이며 바로 왕이 있는 곳을 지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월읍에 있는 동강을 가리켜 ‘어라연’이라 부는 것도 ‘奈’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어라연은 정선과 영월 일대를 흐르는 동강(東江)의 상류다. 동강과 평창강이 합류하여 정양산성 아래서는 남한강이 된다. 옛날에는 어라사(於羅寺)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후대에 이 성을 ‘정양산성’이라고 부른 것도 왕이나 황제와 연관이 있다.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을 천손(天孫)이라고 불렀다. 고구려 시조 주몽도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가 낳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해’는 바로 태양(太陽)이다. 그래서 고구려인들은 태양에 살고 있다는 삼족오(三足烏)를 신물로 삼았다. ‘정양’은 즉 태양을 지칭하는 것이다.

‘정양(正陽)’은 중국의 <고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된다.

정양문은 황제의 용마차가 출입하는 문이며 또한 국문이라고 부른다. 중국 역사에서 보면 진시황 때부터 시작됐다(正陽門因皇帝龍車出入此門,又稱 ‘國門’ 從中國歷史上來看, 就是從秦始皇開始 云云).

왕검이나 정양이라는 호칭은 고구려 제왕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고구려가 이 성을 차지한 시기, 한 때는 왕이 남순(南巡)하여 임시 거처를 삼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 왕은 5세기 후반 아차성을 침공하여 개로왕을 참수한 장수왕인가 아니면 그 손자 문자왕이었을까.

이 성에 대한 고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 영월 고적조에 “석축주 이천삼백십사척고십구척(石策周 二千三百十四尺 高十九尺)”이라는 기록과 <대동지지> 영월성지조에 “정양산 고성 주 이천이백십사척(正陽山古城 周二千二百十四尺)”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연려실기술별집> 권17 변어전고(邊圉典故) 폐산성(廢山城)에서는 “영월정양산성 군동십이리 석축(寧越正陽山城 郡東十二里 石築)”이라 하였다. <증보문헌비고> 권28 여지고16 관방4 성곽4에는 “영월정양산성 재동십리 석축 주이천삼백십사척 고 십구척 금폐(寧越正陽山城 在東十里 石築 周二千三百十四尺 高十九尺 今廢)”라고 나온다.

자료에 따르면 성의 전체 면적은 118,637㎡이며, 둘레는 약 1,060m이고 성벽의 평균 높이는 약 8m, 너비는 평균 7m가 된다. 규모가 큰 성이다. 현재 3군데에 현문(懸門) 형식의 문터가 있다. 3군데의 회절(回折)하는 곳에는 치성(雉城) 혹은 곡성(曲城) 흔적이 확인된다고 돼 있다.

정양산성은 사방이 높고 성안이 움푹 들어간 고로봉형(槁栳峯形)의 산성이다. 자연석을 이용한 얇은 판상석(板狀石)의 점판암 석재로 수평 눈 줄을 맞추어 정연하게 축조되었다. 전체적으로 성벽의 잔존 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북문의 경우 양쪽 문지가 잘 남아 있다. 외성은 총 길이가 570m이며, 이 가운데 성벽 북동쪽과 서북쪽의 약 340m만 인공적으로 성벽을 구축했고 나머지 구간은 가파른 석벽과 단애면(斷崖面)을 성벽으로 이용하고 있다. 성벽의 형태는 내성의 서쪽에서 연장되어 서쪽 계곡을 보다 넓게 에워싼 형태를 갖추고 있다. 성벽은 북동·서북·남쪽으로 구성되며, 동남쪽은 내성과 연결된다. 서북쪽 성벽에는 1개의 문터와 배수처(排水處)가 있으며, 동북쪽 성벽에도 1군데에 문터로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 이 성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여러 중요성이 남아있다. 태화산성(太華山城), 대야산성(大野山城), 온달산성(溫達山城), 완택산성(莞澤山城) 등이 그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