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詩] 첫사랑 엽서 - 박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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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엽서

박제천(1945 ~ ) 

살구꽃 피는 우물은 나만의 보물창고

우물 속 깊이 얼굴을 묻고, 아무개야 소리치면
아무개야 메아리지며 달려오는 발소리,

아무개야 아무개야 아무개야 부르면
우불 속 낮달 거울에 어리는 얼굴,

아무개야 아무개야 아무개야 목이 메이면
내 가슴 속 우물에도 참방참방 솟아오르는
그리운 얼굴

살구꽃 황홀한 꽃잔치 한마당.

 

[시평]

옛적 임금님 머리를 깎아주는 이발사가 임금님 왕관을 벗기고 머리를 깎아주는데, 그만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임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인 것을 아는 사람은 오직 그 이발사뿐이니,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이발사가 말을 낸 것이기 때문에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 입을 봉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솟아서, 그걸 참지 못하고는 그만 갈대숲에 가서 힘 있는 데로 큰소리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를 치고 오니, 마음이 다소 편안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더 큰 일은 바람이 불 때마다, 그 갈대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왔다는 이야기이다.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첫사랑은 참으로 마음에 담겨진 사랑이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 말을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를 하는 그런 사랑이다. 나 누구를 좋아하는데 하는 말이 목젖을 넘어오지 못하고 그만 가슴에 남아 뭉쳐져 있는 그 사랑.

그래서 우물을 들여다보고, 아무개야 소리치면, 아무개야 메아리지며 들려오는 소리, 그 소리에 따라 다시 아무개야 아무개야 목이 메게 부르던 첫사랑의 이름. 그러고 나면, 우물 속 낮달 거울에 어리는 그 가시나의 얼굴. 그렇다. 살구꽃 피는 마당가 그 우물은 우리들 마음을 적어놓은, 우리들 첫사랑 엽서였다. 부르고 싶었던 그 첫사랑의 이름을 적어놓은 우리의 첫사랑 엽서, 지금도 어쩌다 홀로 꺼내보는 첫사랑 엽서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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