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현재 북한의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의 위험성이 어느 지경에 도달했는지 알려주는 지표가 하나 있다. 2월 8일은 북한군의 정규군 창설 72주년 창군절이다. 이미 지난해 가을부터 평양시 미림비행장에서 북한군 육군의 열병식 준비 연습이 공개된 데 이어 12월에는 원산 갈마비행장에 북한 공군 전투기 30여대가 집결해 훈련하는 등 북한은 창군절 열병식 준비를 착실하게 해왔다. 그런데 2월 8일 김일성광장은 조용했다. 북한은 열병식도 군사적 도발도 모두 접었다. 대신 각종 매체를 통해 “혁명적 무장력은 최전성기”에 달했다고 선전하며 ‘정면돌파전’ 국면에서 인민군의 역할과 임무를 거듭 강조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북한은 지난 1948년 2월 8일 인민군을 창건하고 ‘건군절’로 기념해 왔지만 1978년부터 항일유격대 창설일인 ‘1932년 4월 25일’을 인민군 창건일로 기념했다. 김정일의 작품이었다. 이후 지난 2018년 1월 당중앙위 정치국 결정서를 통해 인민군 창건일을 1948년 2월 8일로 다시 변경했다. 이것은 김정은의 군에 대한 인식과 관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김정은은 지난해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에 명시돼 있던 ‘선군사상’과 ‘선군영도’란 문구를 삭제해 버렸다.

북한은 창군 70주년이 되는 지난 2018년에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열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연설을 했다. 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비롯한 전략 무기도 선보였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실무협상을 진행하며 다소 차분한 분위기에서 건군절을 보냈다. 올해는 북한이 지난해 말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 노선을 채택하고, 새로운 전략무기를 언급하면서 도발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북미 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미국이 대선 레이스에 들어가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변수까지 불거지면서 외부적 대응을 자제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이날 ‘조선인민군은 당의 위업에 무한히 충실한 혁명적 무장력이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항일의 전통을 이어받은 주체적인 정규군이 탄생해 나라의 자주권을 굳건히 수호하고 백두의 대업을 빛나게 실현해 나갈 수 있는 튼튼한 무력적 담보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노동신문은 이어 “우리식 사회주의가 혹독하고 위험천만한 격난을 뚫고 승리의 한길로만 줄기차게 전진해 올 수 있는 것은 인민군대가 조국보위, 혁명보위, 인민보위의 사명과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극찬했다. 특히 “오늘 조선의 혁명적 무장력은 김정은 동지를 진두에 높이 모셔 자기 발전의 최전성기를 수놓아가고 있다”며 “최고 영도자 동지의 영도 밑에 조선인민군대의 전투적 위력은 날로 백배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 역시 ‘영웅적 조선인민군은 우리 공화국의 크나큰 자랑이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조선인민군은 조선인민혁명군의 백절불굴의 혁명 정신과 풍부한 투쟁 경험, 영활한 전법을 이어받은 명실공히 항일의 전통을 계승한 혁명 군대”라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 앞에는 위대한 당의 영도에 따라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 나가야 할 영예로운 과업이 있다. 인민군대의 투쟁정신과 투쟁 기풍을 적극 따라 배워 정면돌파전에서 영예로운 승리자가 돼야 한다”며 “최고 영도자 동지의 영도를 받는 불패의 혁명적 무장력이 있는 한 우리 공화국은 끝없이 강대하고 융성 번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오늘 창군 72주년을 맞는 북한군은 김정은 정권에게는 하나의 ‘우환거리’가 되고 있다. 2500만 인구에 119만 명의 정규군을 먹여 살릴 힘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으로 무연탄과 철광석을 팔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북한군은 이제 식량창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대북제재의 첫 희생자는 바로 군대가 되고 있는 가운데 그들이 총부리를 어디 돌릴지 평양은 불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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