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지금 평양이 뒤숭숭하다. 왜 그럴까?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로 가뜩이나 벼랑 끝에 선 북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등 떠밀고 있으니 이제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1995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자신은 물론 세 자녀들과 측근들을 데리고 남미 등지로 망명하려고 브라질 국적의 여권을 만든 바 있다. 지난 1월경 다시 김정은 위원장이 해외 망명을 준비하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솔레이마니 암살 후 나온 정보가 그것에 신뢰를 더해 주었다. 엊그제 열린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북한은 이만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해임했다.

조직지도부장이 어떤 자리인가. 1967년 김일성의 친동생 김영주가 갑산파의 박금철을 제치고 그 자리에 오른 후 다시 권력투쟁 끝에 김정일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1974년 2월이었다. 물론 김영주는 권력무대에서 밀려나 자강도 강계의 산간벽지로 쫓겨나야만 했다. 그 후 그 자리는 김정일에 의해 독점돼 왔고, 다시 2011년 그가 사망하자 자동적으로 김정은에게 승계됐다. 그런데 지난 2016년 노동당 제7차 당대회에서 바로 그 자리가 최용해에게 넘겨졌다. 그리고 지난해 다시 최용해에서 이만건으로 조직지도부장 자리가 넘겨졌는데, 엊그제 이만건이 그 자리에서 쫓겨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현재 평양의 권력은 세차게 요동치고 있다는 반증이다. 아마도 조직지도부장 자리가 김여정에게 차례진다면 그 33살의 여성이 휘두를 칼날의 예리함은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북한의 공식 매체들은 코로나19가 북한에 전혀 상륙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줄 수는 없다. 워낙 그들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 왔기 때문이다. 감염 사례가 있는데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해당 지역의 관리들이 은폐하고 보고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단 시약이 부족해, 감염이 의심되는 사례가 발생했는데도 의사가 이를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확진자가 발생했든 아니든, 북한은 지난달 28일 자 노동신문에서 “국가 존망의 문제”라고 언급할 만큼 코로나19 감염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북한에 코로나19가 침투하면 그 어느 나라보다도 급속하게 확산해 높은 치사율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 북한 주민들은 영양실조로 인해 면역력이 약하고, 북한에는 의료품이 부족하고 격리 시설도 매우 낙후돼 있다. 최근 평양의 러시아 대사관은 북한의 외국인 격리 조치로 인해 직원들이 온수가 나오지 않는 차가운 방에 격리됐다고 항의했다. 외국인조차도 이런 대우를 받았다면 북한 주민들이 격리되면 훨씬 열악한 상황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리고 북한의 형편없는 의료 서비스 때문에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전파될 것이다.

혹자는 북한이 이 지경까지 이른 원인이 국제적인 대북제재에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대북제재가 실행되기 한참 전부터 북한의 의료 체계는 이미 붕괴해 있었다. 전 평양주재 영국 대사조차 2009년 북한에서 자신이 들른 어느 시골 약국에는 약사가 환자에게 줄 약품이 전혀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약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환자에게 차 한 잔을 대접하며 위로하는 것뿐이었다고 한다. 그 무렵에 이미 북한 병원들은 빈 맥주병을 재활용해 살균 용기 대용으로 쓰고 있었다. 감염 확산은 정치 활동에 큰 제약을 가져올 것이다. 북한은 이미 2월 8일의 건군절 기념 열병식을 취소했고, 4월 12일로 예정돼 있었던 평양 마라톤 대회도 취소했다. 질병에 대한 대처 자체가 정치적 난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북한은 이미 다량의 의약품을 요청했고, 그들이 요청한 의약품을 얼마나 받았는지, 또 얼마나 받을 예정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북한은 내부 위기관리를 극복할 능력은 있지만 이처럼 무서운 질병 같은 자연적인 위기에 대처할 능력은 분명 부족하다. 역시 평양이 망명을 꿈꿀만한 엄중사태는 목전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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