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저녁 전격 검찰인사 단행

윤석열 사단 사실상 ‘해체’

살아있는 권력 도전에 경고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정당한 인사권 사용인가, 보복성 좌천인사인가. 법무부가 8일 전격 단행한 검찰인사에 대한 설왕설래가 쉬이 끝나지 않을 기세다. 환영하는 쪽이든 반발하는 쪽이든 이번 인사는 ‘역대급’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시작부터 법무부·검찰 기싸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와서 인사 의견을 내라고 했음에도 (오지 않았다)”며 “검찰총장이 저의 명을 거역했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을 이해하기 위해선 검찰인사 발표 과정을 되짚어 봐야 한다. 전날 저녁 법무부는 13일 자로 이뤄지는 검찰 고위 간부들의 인사이동 내역을 전격 발표했다. 추 장관이 청와대를 다녀온 직후였다.

발표 직전까지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인사 명단을 두고 신경전을 펼치고 있었다. 법무부는 8일 오전 10시 30분 법무부 청사에서 인사안에 대한 윤 총장의 의견을 듣겠다며 윤 총장을 ‘호출’ 했다. 검찰인사위원회가 열리기 30분 전이었다. 이외에도 ‘오후 4시까지 인사에 대한 의견을 달라’는 내용의 업무연락도 보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1.9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1.9

◆‘항명’ 판단에 尹의견 배제

하지만 대검은 이 같은 만남이 ‘요식’행위에 그칠 것을 우려해 호출을 거부했다. 의견 요청도 거절했다. 인사 명단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의견을 내는 건 부적절하다는 게 이유였다.

법무부에선 대검의 행동을 사실상의 ‘항명’으로 봤다. 추 장관도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인사위 이후에도 얼마든지 의견 개진이 가능하다고,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무려 6시간을 기다렸다”며 “그러나 검찰총장은 ‘제3의 장소로 인사의 구체적 안을 가지고 오라’고 법령에 있을 수 없고 관례에도 없는 요구를 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검찰청법에 따라 총장의 의견을 들으려 했지만, 대검이 무리한 요구로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윤 총장 의견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검찰인사는 ‘파격’ ‘충격’ 그 자체였다.

◆총장 ‘손발’ 다 자른 ‘파격’

고등검사장과 검사장 등 모두 32명에 대한 인사 조치가 이뤄졌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윤석열 검찰총장을 보좌해 수사를 지휘하는 대검 간부 5명이 전원 교체됐다는 점이다.

윤 총장의 ‘왼팔’ ‘오른팔’로 불리던 한동훈(47, 사법연수원 27기) 반부패강력부장 박찬호(54, 26기) 공공수사부장은 나란히 지방으로 발령 났다. 한 반부패부장은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박 공공수사부장은 제주지검장으로 갔다.

이 두 사람은 윤 총장의 최측근이자 문재인 정부 관련 수사를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 반부패부장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 비리 의혹과 감찰 무마 의혹 수사를 지휘했고, 박 공공수사부장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를 총괄했다.

현 정부와 관련된 수사를 지휘하던 이들을 동시에 지방 발령하면서 ‘좌천성’ 인사가 아니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모든 사건의 수사 실무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의 수장인 배성범(58, 23기) 검사장은 고검장으로 승진해 법무연수원장으로 전보됐다. 모양새는 승진이지만, 수사권이 없는 자리로 갔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강남일(51, 23기) 대검차장 검사도 대전고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한동훈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 1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출석, 입술을 다물고 있다.ⓒ천지일보 2019.10.17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한동훈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 1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출석, 입술을 다물고 있다.ⓒ천지일보 2019.10.17

◆수사의도 “불순했다”고 ‘철퇴’

이른바 ‘윤석열 사단’을 뿔뿔이 흩어놓음으로서 정부는 윤 총장이 이끌던 지금까지의 수사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추 장관은 지난 2일 “수술 칼을 환자에게 여러 번 찔러 병의 원인을 도려내는 것이 명의가 아니라, 정확하게 진단하고 정확한 병의 부위를 제대로 도려내는 것이 명의”라고 밝히며 전방위적으로 이뤄진 검찰의 수사를 비판한 바 있다.

수차례 검찰의 수사가 ‘불순’하다는 청와대의 지적에도 수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파격 교체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6개월 전 전폭적인 신뢰 속에 임명한 총장의 손발을 청와대가 직접 자른 셈이 됐다.

◆현 정부 인연들은 약진

새로이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이성윤(58, 23기) 법무부 검찰국장과 이 검사장의 뒤를 이어 검찰국장이 된 조남관(55, 24기) 서울동부지검장의 경우는 특이 케이스라 주목할 만하다.

이 검찰국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동문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한 경력이 있다. 윤 총장과 청와대가 갈등을 빚기 시작할 무렵 윤 총장을 수사선상에서 빼자고 검찰 간부에 제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조 검사장 역시 노 전 대통령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지만, 감찰무마 의혹을 수사하던 서울동부지검의 수장이었단 점에서 의외라는 시각도 있다.

추 장관의 인사청문회 준비단 홍보팀장을 맡았던 심재철(27기) 서울남부지검 1차장 검사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부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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