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작화추색(雀華秋色)
[고전 속 정치이야기] 작화추색(雀華秋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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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가을의 호수는 다른 맛이 있다. 산동성 제남시의 중심에서 동북쪽에는 면적 80평방㎞의 대명호가 있다. 수면만 46평방㎞인 대명호는 북위의 역도원이 지은 수경주에 처음 등장한다. 원대에는 호수에 연꽃이 많아서 연자호라 불렀다. 수당시대에는 역하파라 부르기도 하였다. 당대에 대명사라는 절이 세워진 것이 이름의 유래이다. 대명호의 밑바닥은 물이 통과하지 못하는 화성암으로 구성됐다. 지세가 낮아서 샘물이 많이 모이지만 화성암 때문에 지하로 스며들지 않는다. 대명호의 물은 진주천, 부용천, 왕부지와 같은 곳에서 모여들어서 평균수심이 3미터나 된다. 대명호공원은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경에 발길을 끈다. 호수에는 신선한 물고기, 연뿌리나 줄기, 창포와 같은 음식재료도 많다. 이들이 역하풍미라는 유명한 음식을 만들어낸다. 이 호수가 신기한 것은 뱀이나 개구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 갑자기 비가 내려도 물이 넘치지 않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대명호의 경치는 사계절에 따라서 다르다. 역성현지에는 그 풍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물빛은 한없이 넓고, 산색은 멀리서 닿았네. 겨울에는 하늘까지 얼음이 얼더니, 여름에는 파도가 일렁거리네. 가을에는 눈빛이더니, 봄에는 수양버들 늘어져 있네.”

제남 사람들은 마름잎과 연꽃이 휘감고 있는 모습은 강남보다 낫다고 말한다.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을 하기 싫은 사람도 달빛이 호수를 물들이는 것을 보고는 다른 말을 못하리라.

대명호의 경치는 고금을 막론하고,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탄을 받았다. 대명호에 남아 있는 많은 시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13세기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대명호의 아름다움은 눈을 돌릴 틈도 주지 않는다고 감탄했다. 청대의 문인 왕윤진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대명호를 칭찬하고 있다.

천조양류수성구(千條楊柳數聲鷗), 일편파리일엽주(一片玻璃一葉舟),

한간어아유경리(閑看魚兒游鏡里), 부지인재경중유(不知人在鏡中游).

늘어진 수양버들에 갈매기 울음소리,

한 조각 유리 속에 조각배 한 닢.

한가롭게 거울 속에 노니는 물고기를 보다가,

거울 속에 사람이 노니는 걸 알지 못했다네.

과거에는 유명한 작화교가 있어서, 그곳에서 작산과 화산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원래는 돌로 만든 다리에 커다란 구멍이 있어서 그 속을 배가 지나다니기도 했다. 이 다리는 지금 없어졌지만, 송원사대가 가운데 한 사람인 조맹부가 그린 작화추색도에 그 모습이 남아있다. 1259년 조맹부는 명을 받아서 북경에서 세종실록을 편찬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가 원래 송대 황제의 후손이었다는 소문을 듣고 조덕방으로부터 팔왕의 11세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송황실의 후손이라는 이유 때문에 불안했다. 그 해 겨울 그는 관직에서 물러나 한주의 친구 주밀의 집에 은거했다. 주밀은 조맹부에게 고향 제남의 인정과 풍속 그리고 산천의 모습을 자세히 물었다. 조맹부는 기억을 더듬어 당장 그에게 작화추색도를 그려주었다.

600년 동안 이 명화는 여러 소장가들의 손을 거쳤고, 많은 문인들의 제사가 붙었다. 청대에 궁궐로 들어갔다. 1748년 건륭제가 남순을 하다가 제남에서 이 그림을 가져오게 하고, 실제 풍경과 대조를 했다고 한다. 건륭제는 친히 작화교에 올라가 시를 남겼다.

대명기시은하반(大明豈是銀河畔), 하사거연가작교(何事居然駕鵲橋).

대명호가 어찌 은하수 가에 있는가했더니,

작화교에 올라가 보니 그 이유를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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