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반복무상(反覆無常)
[고전 속 정치이야기] 반복무상(反覆無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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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고, 의심이 나면 그 사람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얻고도 화를 당한다. 이주영(爾朱榮)이 효장제(孝庄帝) 원자유(元子攸)에게 피살되자 그의 종제 이주세륭(爾朱世隆)은 북으로 도주해 조카 이주조(爾朱兆)와 산서성 장자현(長子縣)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태무제 척발도(拓跋燾)의 현손 원엽(元曄)을 황제로 추대했다. 얼마 후 낙양을 습격한 이주조는 효장제를 살해했다. 이주세륭 등은 원엽을 폐하고 헌문제 척발홍(拓跋弘)의 손자 원공(元恭)을 황제로 추대했다.

북위의 고건(高建)과 동생 고오조(高敖曹)는 효장제가 죽자 이주씨를 성토하고 실력자 고환(高歡)을 불러들였다. 고환은 조위(曹魏)의 시어사 고밀(高謐)의 후손으로 혈통은 한족이었으나 선비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고환은 이주조를 격파하고 원랑(元郞)을 황제로 옹립하고 승상이 됐다. 고환은 업성(鄴城)으로 원랑을 옮기고 이주조를 몰아냈다. 낙양으로 들어간 고환은 원공과 원랑을 폐하고 효문제의 손자 원수(元修)를 효무제로 옹립했다.

정권을 잡은 고환은 자기 세력을 강화했다. 효무제가 그를 제거하려고 했다. 중신 고건은 부친이 죽었으나 나라의 일이 바빠서 상복도 입지 못했다. 조정이 안정되자 고건은 아버지의 상례를 마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효무제는 요청을 들어주는 대신 그를 해임했다. 고건은 효도를 다하려고 했을 뿐인데 해임하자 불만을 품었다. 효무제는 밖에서 하발악(賀拔岳)을 중용하고, 안에서는 곡사춘(斛斯椿)을 심복으로 삼았다. 고건을 무시하던 효무제는 인기가 많은 그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술잔치를 베풀고 설득했다. 황제의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은 고건은 속셈을 가늠할 틈이 없어서 엉겁결에 수락했다. 그러나 차마 그 사실을 고환에게 알리지 못했다. 효무제가 하발악과 자주 접촉하는 것을 본 고건은 장차 화가 자기에게 미칠 것이라고 생각해 고환과 몰래 연락했다. 고환이 고건을 불러 직접 대책을 의논했다. 고건은 제위를 탈취하라고 권했다. 고환은 직접 몇 번이나 고건의 복직을 주청했지만, 효무제가 듣지 않았다. 두 강자 사이에서 진퇴유곡의 위기에 몰린 고건은 서주자사로 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를 가까이 두는 것을 꺼리던 효무제는 즉시 허락했다.

그러나 고건이 임지로 떠나기 전에 효무제는 그가 고환과 몰래 왕래하면서 조정의 기밀을 누설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대노한 그는 고환에게 고건은 양다리를 걸치는 소인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황제의 말을 그대로 믿은 고환은 그동안 고건과의 관계를 효무제에게 실토했다. 얼마 후 효무제는 고건에게 고환의 말을 근거로 사실대로 말하라고 다그쳤다. 화를 면할 길이 없다고 생각한 고건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

“폐하께서 다른 마음을 품었으면서 거꾸로 신에게 반복무상하다고 하십니까? 인주(人主)가 죄를 씌우는데 누가 피할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그 사실을 들은 고환은 크게 후회했다. 고건의 동생이 병주로 피신해오자 고환은 그를 끌어안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고건이 죽은 후 고환과 효무제의 충돌이 본격화되었다. 고환은 하발악이 마음에 걸려 후막진열(侯莫陳悅)을 시켜 하발악을 죽였다. 효무제도 우문태(宇文泰)를 시켜 후막진열을 죽였다. 선비족 우문태는 훗날 수와 당의 중심인물을 배출한 관롱집단(關隴集團)의 창시자로 이주영의 옛 부하였다. 효무제가 고환의 죄를 성토하자 고환이 군대를 이끌고 남하했다. 효무제는 우문태에게 의지했다. 우문태와의 충돌을 꺼린 고환은 효문제의 증손 원선견(元善見)을 황제로 추대하고 도읍을 업성으로 옮겼다. 그가 동위(東魏)의 효정제(孝靜帝)이다. 우문태도 효무제를 시해하고 원보거(元寶炬)를 황제로 옹립했다. 그가 서위의 문제이다. 북위는 두 영웅에 의해 동서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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