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삼세번이란 말이 있다. 북한과 미국이 세 번째로 마주 앉았다.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4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사실상 재개됐다. ‘하노이 결렬’ 이후 7개월 만이다. 북-미 실무 대표단은 이날 스톡홀름 인근 모처에서 5일 정식 실무협상을 갖기 전 예비접촉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가까스로 접촉이 성사됐음에도 협상 진전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것이 외교가의 중론이다.

북-미가 비핵화 및 상응 조치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가운데 북한이 2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라는 도발을 감행하면서 ‘강 대 강’ 대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5일 실무협상을 앞두고 열린 이날 북-미 예비접촉엔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과 권정근 전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이 나서 서로의 협상 입장을 사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전 국장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정남혁 북한 미국연구소 연구사 등 6명은 오전 9시 40분경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검은색 승합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이 취재진에 목격됐다.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전 하노이 주재 북한 대사)의 모습은 별도로 포착되지 않았다. 미국 측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이날 오후 2시경 스톡홀름 스웨덴 외교부로 들어가는 모습이 취재진에 목격됐다.

북-미는 이날 실무접촉까지 상반된 분위기를 보였다. 북한이 협상 ‘낙관론’을 언급하며 공세적으로 협상에 나설 것을 예고했던 반면, 미국은 실무협상과 관련한 공식 언급을 일절 꺼리며 극도의 ‘신중 모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해임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거론하며 북한을 상대하는 ‘새로운 방법(new method)’이 필요하다고 밝혔던 것에 아직 고무돼 있는 모양새다. 김명길 순회대사는 3일 스톡홀름으로 가기 전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에서 “미국으로부터 새로운 신호가 있다”며 “결과에 대해 매우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거듭 강조하면서 미국에 ‘단계적 비핵화’에 대한 압박을 넣은 셈이다.

반면 미국 측은 실무협상에 대해 막판까지도 철저히 함구했다. 하노이 정상회담 실무협상을 앞두고 미 국무부는 1일 “(북-미) 당국자들이 향후 한 주 내에 만날 것”이라고 밝힌 것 이외에 실무협상에 대한 그 어떤 구체적 언급도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3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SLBM 발사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지켜보자”며 “북한은 대화하기를 원하고 우리도 곧 그들과 대화할 것”이라고 말하는 데 그쳤다. 북한 측에서 흘러나오는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외교가에선 북한의 영변 핵시설과 비공개 핵시설에 대한 검증 가능한 동결 혹은 폐기를 원하는 미국의 기본 협상 입장이 바뀌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협상 상황에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낙관론을 펼치는 주원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방식’ 언급뿐”이라며 “(실무 선에서 교감된) 다른 요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실무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제안한 비무장지대(DMZ) 국제평화지대 구상의 구체적 실천방안을 조기 수립해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세 번째의 미국과 북한의 대화 열매는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프로그램은 내년의 미국 대선프로그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과 미국의 진도에서 우리 한국이 소외되고 있는 듯한 느낌은 대단히 불쾌한 것이다. 김정은의 11월 부산 방문이 성사돼 한국의 레버리지를 키워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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