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논단] 재난에 대한 북한의 달라진 태도의 의미
[통일논단] 재난에 대한 북한의 달라진 태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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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과거 북한은 재난 등 안 좋은 일은 모두 숨기는 게 관례였다. 강성대국에서 자연재해 하나 막아내지 못하면 그것이 곧 체제취약성이란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태도는 서서히 바뀌고 있다. 체제 이미지에 부정적인 피해 상황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던 구태에서 벗어나 적극 알리고 수습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고 있다. 사전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예방조치’에 관심을 보이고 나선 대목도 눈길을 끈다.

지난 7일 북한 지역을 휩쓴 13호 태풍 ‘링링’은 이런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지휘봉을 잡고 대책 마련을 주문하는 모습은 김정일 집권 시기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북한 관영매체가 쏟아낸 보도 가운데 적잖은 부분이 김정은 체제 찬양·선전에 맞춰지는 한계가 있지만, 과거와 다른 재난 대비와 대응은 전향적이고 발전된 양상이란 평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재난 방지와 수습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태풍 링링이 할퀴고 간 흔적을 짚어보며 바람직한 평양판 재난 대처 방안을 진단해 본다. 13호 태풍의 진로가 북한 황해도 쪽으로 향할 것이란 예보가 나온 지난 6일 오전 평양. 군 최고사령관을 겸하는 김정은의 지시로 노동당 중앙군사위(위원장 김정은) 비상확대회의가 긴급 소집됐다.

인민복 차림의 김정은 뒤편으로는 태풍의 한반도 진로와 북한 지역별 예상 강수량이 적힌 대형 그림이 걸려 있었다. 태풍 링링에 대처하기 위한 ‘국가적인 비상재해 방지대책 토의’가 핵심 안건이었다는 게 관영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다. 회의 내용을 상세히 전한 북한 매체들의 보도는 원고지 기준 20매에 달할 정도로 길었다. 

그런데 보도 끝부분에 “중앙군사위는 박정천 육군 대장을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으로 새로 임명했다”는 대목이 등장했다. 또 “총참모부 작전총국의 지휘성원들을 해임 및 조동(調動, 자리를 옮김)했다”고 밝혔다.

1년 3개월 만에 전임 이영길에서 포병 출신 박정천으로의 경질이었다. 교체 배경과 관련해 주목되는 건 이날 회의에서 나온 김정은의 언급이었다. 당중앙군사위원 뿐 아니라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과 관련 부처 책임자 등이 참여한 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작심한 듯 간부들의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태풍과 관련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위험한 상황이 닥쳐들고 있지만 당과 정부의 간부들로부터 중앙과 지방의 ‘일군’들에 이르기까지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안일한 인식에 포로되어 속수무책으로 구태의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진행된 회의에서 나온 총참모장과 작전총국 간부 경질 사태를 놓고 우리 대북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비상확대회의 소집이나 진행 과정에서 뭔가 김정은의 심기가 뒤틀리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란 관측이 나왔다.

태풍 대비에 대한 군부의 무성의한 보고나 구태의연한 대처 자세가 문제가 됐고, 문책 차원에서 총참모장 경질이 이뤄졌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김정은이 ‘예방’ 쪽에 초점을 맞춘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그는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대상과 요소들을 빠짐없이 찾아내 취약지대를 점검하는 등 피해 예방에 대중을 적극 조직 동원하라”고 말했다. “산과 계곡·하천, 낮은 지대와 침수 위험지역, 산사태 의심 구역과 지하 공간, 붕괴 위험 건물들에 있는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기 위한 활동도 시급히 조직하라”고 덧붙였다.

하루 뒤에는 국가비상재해위원회가 나서 “현재까지 5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으며 4만 6200여 정보(약 458㎢, 여의도 면적의 157배 수준)의 농경지가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피해 복구에도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 전해졌다. 내각과 국가계획위원회 등이 망라된 ‘중앙지휘부’가 구성돼 피해 주민을 위한 식량과 생활필수품·의약품 등이 공급됐고 전력망 복구와 철도 보수가 이뤄졌다고 한다. 이제 북한이 할 일은 경제를 하루빨리 복구해 재난을 미연에 방지하기만 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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