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백제사] 무왕비 사택적덕의 따님은 누구인가(1)
[다시 쓰는 백제사] 무왕비 사택적덕의 따님은 누구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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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사진제공 익산시청·국립부여박물관 

‘사택’은 신라 6부 호족 백제 이주세력

후세 나타날 미륵선화 ‘선화공주’에 부회

미륵사지 전경
미륵사지 전경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얼려두고

맛둥 서방님을

밤에 몰래 품으러 간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향가 ‘서동요(薯童謠)다. 이 노래에는 백제, 신라의 젊은 남녀 간 로맨스가 있다. 비록 칼을 들고 싸우는 적국이었지만 백제 왕자 서동은 신라 서울에 잠입하여 아름다운 선화공주를 보고 흠모한 나머지 거짓 노래를 불러 유행시킨다. 결국 서동은 선화공주를 백제로 데려오는 기쁨을 얻는다.

백제에 온 선화공주는 서동이 왕이 되자 왕비가 됐고, 서동이 살았던 익산 미륵산 아래에 거대한 가람을 지었다. 익산 미륵사지가 바로 그 자리다. 이러한 서동과 선화공주 설화는 우리 민족에 오랫동안 회자되어 내려왔다.

미륵사지는 백제 가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대역사였다. 경쟁이나 한 듯 신라 또한 왕궁인 반월성 옆에 최대 규모의 절 황룡사를 지었다. 특히 황룡사는 선덕여왕 시기 백제 일류 건축 기술자들을 초빙함으로써 공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익산 미륵사는 신라에서 시집을 온 선화공주의 발원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설화에 나타난다. 적국이란 공간을 뛰어넘어 맺어진 남녀 상열의 이 설화는 전쟁이 없는 미륵세계를 희구하기 위해 지어낸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 백제 서동이 신라 선화공주를 데리고 온 것일까. 미륵삼존의 출현과 창건 설화 <삼국유사>에 기록된 미륵사지 창건 설화를 보자.

서동이 선화공주와 혼인한 후 왕이 되어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연못 속에서 세 명의 미륵이 출현했다. 무왕은 이 영험에 감동하여 미륵사를 창건하게 됐다. 미륵 삼존을 위해 세 동의 전(殿, 金堂), 세 개의 탑(搭), 낭무(回廊)를 세웠다고 한다.

불교학자들은 미륵사의 창건을 미륵경(彌勒經)의 구체적인 실현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미륵불의 출현이 경전에서는 용화수 아래에서의 성불인 반면, 미륵사 창건 설화에서는 용화산 큰 못에서 미륵 삼존 형태로 등장한 것이라는 견해다. 미륵경전상에는 미륵불이 지상에 출현하기 전에는 도솔천의 사자좌에 앉아 있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무왕 설화에는 왕과 왕비가 사자사로 가는 길에 미륵 삼존을 만난 것으로 나온다. 이 때문에 그들이 찾아갔다는 사자사를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의 사자좌로 볼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삼탑삼금당(三塔三金堂)의 가람 배치 역시 미륵국토를 재현한 것으로, 미륵사 창건을 통해 미래 낙토를 익산 땅에 실현코자 했던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불교학자들은 미륵경전상의 전륜성왕은 무왕에 비유하고, 선화공주는 미래에 나타나 민중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보살인 ‘미륵선화’를 상징한다고 보고 있다. 미륵사 창건이 국가의 융성을 비롯해 왕과 왕비가 백성들의 홍복(洪福)을 염원한 데서 이뤄졌다는 해석이다.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금제 사리함과 사리 등의 유물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금제 사리함과 사리 등의 유물

뜻밖의 문제, 금제사리 봉안기

지난 2009년의 일이다.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유물이 발견됐다. 석탑 사리공에서 금판으로 만든 사리봉안기(舍利奉安記)가 나온 것이다. 이 유물은 무왕과 선화공주의 로맨스가 어린 미륵사지의 창건 설화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 왔다. 서동과 선화공주를 상징으로 삼은 익산시가 제일 실망했다. 그렇다면 설화는 거짓일까. 금판에 반듯한 붉은 글씨로 쓰인 ‘사리봉안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앞면)

竊以法王出世隨機赴 / 感應物現身如水中月 / 是以託生王宮示滅雙 / 樹遺形八斛利益三千

遂使光曜五色行?七 / 遍神通變化不可思議 / 我百濟王后佐平沙乇 / 積德女種善因於曠劫

受勝報於今生撫育萬 / 民棟梁三寶故能謹捨 / 淨財造立伽藍以己亥

(뒷면)

年正月卄九日奉迎舍利 / 願使世世供養劫劫無 / 盡用此善根仰資 大王 / 陛下年壽與山岳齊固

寶曆共天地同久上弘 / 正法下化蒼生又願王 / 后卽身心同水鏡照法 / 界而恒明身若金剛等

虛空而不滅七世久遠 / 并蒙福利凡是有心 / 俱成佛道

“가만히 생각하건데, 부처님(法王)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근기(根機)에 따라 감응(感應)하시고 바람에 맞추어 몸을 드러내심은 물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석가모니께서는 왕궁에 태어나셔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곡(斛)의 사리(舍利)를 남겨 3천 대천세계를 이익 되게 하셨다. 마침내 오색(五色)으로 빛나는 사리를 7번 요잡(오른쪽으로 돌면서 경의를 표함)하면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할 것이다. 우리백제 왕후께서는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에 선인(善因)을 심어 금생에 뛰어난 과보(勝報)를 받아 만백성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불교 삼보의 동량(棟梁)이 되셨기에 능히 정재(淨財)를 희사하여 가람(伽藍)을 세우시고 기해년(己亥年) 정월 29일에 사리(舍利)를 받들어 맞이했다. 원하옵나니, 세세토록 공양하고 영원토록 다함이 없어서 이 선근(善根)을 자량(資糧)으로 하여 대왕폐하의 수명은 산악과 같이 견고하고 치세는 천지와 함께 영구하여, 위로는 정법(正法)을 넓히고 아래로는 창생(蒼生)을 교화하게 하소서. 또 원하옵나니, 왕후(王后)의 신심(身心)은 수경(水鏡)과 같아서 법계(法界)를 비추어 항상 밝히시며, 금강 같은 몸은 허공과 나란히 불멸(不滅)하시어 칠세(七世)의 구원(久遠)까지도 함께 복리(福利)를 입게 하시고, 모든 중생들 함께 불도를 이루게 하소서.”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이 바로 이 사찰을 발원한 장본인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선화공주가 아니었다. ‘백제 좌평 사탁적덕’의 따님으로 등장했다. 사탁적덕, 그녀는 누구였을까.

미륵사지 복원 모형
미륵사지 복원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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