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백제문화단지
백제문화단지

최고 아름다운 기와 창출한 백제

백제는 삼국 중 건축기술이 가장 발전한 나라였다. 앞선 건축기술은 신라 왕실이 부러워했으며 일본 왕실은 누대에 걸쳐 백제 장인들을 스승으로 삼았다. 신라 선덕여왕은 국가 수호를 위한 대 불사 황룡사(皇龍寺) 구층탑을 완성하기 위해 논의를 하게 되는데 신하들은 다음과 같이 진언한다.

“공장(工匠)을 백제에 청한 후에야 가능합니다(善德王 議於群臣 群臣曰 請工匠於 百濟 然後 方可云云).”

황룡사 9층탑의 크기는 무려 82m에 달하는 중층 건물이다. 이런 장엄한 건물을 만들 장인이 신라에는 없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선덕여왕은 신하들의 말을 듣고 보물과 비단을 내어 백제 장인을 초청했다. 서라벌에 온 기술자 대표는 아비지(阿非知)였다.

당시 신라와 백제는 국경에서 충돌하는 시기였다.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백제는 서라벌 대역사에 유능한 건축기술자를 파견한다. 백제 건축기술자들은 서라벌에 묵으면서 기념비적인 신라 삼보(三寶)의 하나인 황룡사 구층탑을 완성하는 것이다. 신라 삼보는 황룡사 구층탑, 장육상(丈六像) 그리고 천사옥대(天賜玉帶)였다.

그런데 백제 장인들은 황룡사 건축물을 지을 때 백제 식의 아름다운 와당(瓦當)을 찍어 덮는다. 와당이란 기와를 말하며 이 건축부자재는 집을 지으면서 처마의 마구리를 막은 조형물이다. 이런 와당에 아름다운 꽃무늬를 넣으면서 미술사적으로 주목을 받는 것이다.

이 와당들은 당시 신라에서 유행했던 와당과 차이가 났다. 황룡사를 발굴하면서 부여에서 유행하던 와당들이 무더기로 나온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백제 부여 궁성이나 금강사지 군수리사지 등에서 발견되는 와당들이 황룡사 지하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백제 장인들은 적국 왕실의 가호를 염원하는 황룡사 구층탑을 지으면서 그들의 트레이드마크를 빠뜨리지 않았던 것이다.

전형적인 백제 와당의 모습은 정제되어 있으며 아름답다. 어느 나라가 흉내낼 수 없이 단정하고 깔끔하다. 와당을 이루는 흙은 모래가 많이 섞이지 않은 유백색의 고품격이다. 일본의 유연한 아스카 문화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일까. 지금부터 1400여 년 전 세기적 아름다운 와당들이 만들어진 백제 왕도 부여로 여행을 떠나 본다.

경주 황룡사 구층탑 모형도
경주 황룡사 구층탑 모형도

몽촌토성, 아차산 홍련봉 출토 와당은 북위계

백제는 초기 한성시대에는 북위(北魏)로부터, 후에는 남조인 송(宋), 양(梁)나라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서울 풍납, 몽촌토성에서 발견된 와당들은 북위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서울 광진구 아차산 아래 홍련봉에서 발굴된 와당도 북위와당을 닮아있다.

이곳을 발굴한 학자들은 이 와당을 고구려 와당이라고 단정 짓지만, 당시 백제 왕실에서 건축물을 지으면서 만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와당들은 선문(線紋)으로 연꽃을 만들고 사이마다 칼처럼 날카로운 간판을 배치하였다. 중국 북위 수도 낙양에서 출토되는 연화문와당들과 흡사하다. 이와 닮은 기와들은 만주 지안 국내성이나 평양성에서도 출토된 예가 있다.

백제는 한성시기 고구려와 더불어 북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는 삼국사기 근초고왕, 근구수왕, 침류왕 기사에서 많이 보인다. 이것이 호승 마라난타가 진(晉)으로부터 백제에 와 불교를 전달하여 백제 불교의 시초가 된 것이다. 침류왕은 2년(385) 한산에 불사를 창건하고 도승 10명을 두었다. 한산은 지금의 아차산 용마산을 지칭하는것으로 초기 백제 불교의 가람터를 찾는 것도 학계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당시 건축물에 사용됐던 와당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진나라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진나라 와당은 현재 중국에서도 매우 귀하게 취급되어 많이 조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풍납토성이나 아차산 홍련봉 와당을 닮은 형태로 끝이 선문으로 되어있으며 끝이 뾰족뾰족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형태의 와당들은 고구려 와당의 기본이 되어 후대까지 이어진다. 백제는 웅천천도 이후 남조인 양나라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완전 다른 모습을 보인다. 북위의 날카로움에서 남조의 평안하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변화된다. 곡창이며 평야지대에 수도를 조성한 백제의 심성을 그대로 닮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삼국 중 가장 아름답고 균형 잡힌 와당문화를 창조하게 된다.

금강사지터에서 발견된 와편
금강사지터에서 발견된 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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