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와장 이근복 선생 ⓒ천지일보(뉴스천지)

중요무형문화재 제121호 번와장

전통 한옥이나 경복궁을 포함한 5대 궁과 주요 사찰을 바라보면 곡선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짓는다. 투박한 기와가 모여 완만한 둥근 형태를 갖춘다. 이웃나라 중국만 하더라도 곡선이 세 화려하다는 인상을 주고 일본은 반듯한 일자여서 밋밋함을 내세우지만 한국은 담담한 곡선을 유지해 어머니의 품같이 아늑하다.

눈과 비를 맞고도 묵묵히 집을 지키는 기와는 가정의 가장을 닮았다. 햇볕이 따가워도 눈비가 내리더라도 묵묵히 집과 사람을 지켜낸다. 이러한 기와와 40여 년을 함께한 번와장 이근복(61) 선생이 있다.

“기와는 전통건축에서 곡선의 미뿐 아니라 목조건물의 수명을 좌우합니다. 기와만 잘 얹혀도 건물은 1000년 이상 버틸 수 있죠. 그래서 말인데 복원 중인 숭례문에 숨 쉬는 기와를 올리고 싶습니다.”

◆숭례문 적심 ‘어떻게’ 불붙었나

이 선생은 숭례문 화재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재가 일어나기 직전 보수작업을 그가 도맡아 진행해 숭례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손때가 묻은 숭례문이 지난 2008년 2월 10일 관리 소홀로 불길에 휩싸였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앉지도 못하고 서성이며 밤을 지새웠다.

올해 안에 숭례문 지붕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지만 현재 정확한 계획이 아직 나오지 않아다. 지붕의 특성상 목조공사가 끝난 뒤 마지막으로 기와를 올리기 때문이다. 이 선생은 “숭례문 복원공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 복원에 참여하는 장인들과 협의해 공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숭례문 화재가 일어났을 때 그는 휴대전화기 전원을 아예 꺼버렸다. 다음 날 확인하니 무려 53통의 부재중 메시지가 그를 기다렸다. 언론매체들은 앞다퉈 이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으나 그는 응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매스컴에서 밝힌 논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지금과 달리 중요무형문화재도 아니었던 터라 구태여 나서지 않았다.

“다들 적심이 탔다고만 하지, 불길이 어떻게 적심으로 들어갔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더군요. 지붕 서까래는 둥글고 그 위에 속판, 즉 개판을 덧댑니다. 개판 안에 적심이 있죠. 서까래가 둥글기 때문에 개판과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조금은 틈새가 벌어진다는 말입니다. 아울러 서까래와 개판 모두 목재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수축되면서 또 틈이 생깁니다. 벌어진 틈으로 불길이 들어가 적심이 탄 셈이죠.”

◆잘 이은 기와 덕에 건물 1000년간 지속

이 선생은 40여 년 동안 하루도 기와와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다. 전북 임실이 고향인 그는 목수·기와·미장일을 척척 해내는 부친의 모습을 곁에서 늘 지켜보았다.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건축일, 특히 기와를 얹는 데에 관심을 두었다. 약관이 되기도 전에 그는 故 기선길 씨 등 여러 스승에게 일을 배우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기와를 잘 잇기만 해도 비가 새지 않아 목조건물이 썩을 염려가 없습니다. 이는 고려시대에 지어진 수덕사 대웅전과 부석사 무량수전 등이 1000년 가까이 지나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죠. 물론, 시간이 꽤 흘렀으니 보수과정도 여러 번 있었겠죠.”

일반인들은 기와지붕이 단순히 눈비 등을 막아주는 데에만 쓰인다고 으레 넘어가지만 이 선생은 기와의 중요성이 생각보다 크다고 강조한다. 특히 그의 말에 따르면 경복궁 근정전처럼 기와 무게만으로도 집이 무너질 수 있다.

옛 궁궐이나 사찰 등 전통 건축을 보노라면 지붕마루의 매력에 빠진다. 지붕마루는 목수가 마루 곡선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곡률은 번와장의 솜씨에 따라 다양하다. 기와지붕이 오래 지속되느냐 아니냐는 번와장의 손끝에 달렸다는 것이다.

“적심을 채우면 채울수록 기와의 선이 축 처지고, 적게 채우면 기와가 부서집니다. 기와를 고정하기 위해 채우는 흙과 생석회의 배합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도 기와가 미끄러지기 때문에 오랜 경험과 솜씨가 필요합니다.”

이 선생은 기와 잇는 일을 해오면서 경복궁 수정전, 창덕궁 돈화문 등 5대 궁궐과 봉정사 극락전, 법주사 대웅전 등 200여 곳을 보수 및 신축했다.

◆뜨거운 햇볕도 마다 않고 기와 사랑

이 선생은 30도를 웃도는 한여름에 기왓장은 보통 40도를 육박한다. 게다가 지붕이라 직사광선을 그대로 받아 더울 때 기와를 수리하거나 이으면 그 고통은 말할 수 없단다. 이는 겨울에도 마찬가지다. 기와 특성상 빠른 속도로 열을 받거나 식기 때문에 겨울에는 춥다 못해 뼈가 시릴 정도다. 아울러 흙이랑 기와가 얼면 작업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쉰다.

이처럼 번와장의 길은 육체적 고통을 수반하는 등 사실 자신과 싸워 이겨야 한다. 기와를 하나하나 잇다보면 발은 미끄러지고, 허리는 끊어질 정도로 고통이 뒤따른다.

“예전에는 번와일은 날씨에 민감해야 하는 동시에 기와 얹히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발 딛는 곳이 기와밖에 더 있었겠습니까. 발 디딤이 있는 것은 최근에 들어와서죠. 지상에서 7~8m 되는 곳을 안전장비 없이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기와 밟고 일을 하니 위험합니다. 환경과 자신을 꾸준히 이겨야만 됩니다.”

화혜·악기 등과 달리 기와가 대중적 관심을 이끌지 못하더라도 이 선생은 언제나 묵묵히 기와 잇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공예 장인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상품 가치가 있다”며 “기와는 한 채의 집이 완성됐을 때 빛을 발한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국민들이 한옥의 우수성을 인식하면서 옛 가옥을 선호한다. 기와 공사가 힘들긴 해도 공사가 없어서 노는 일은 거의 없단다. 게다가 집을 짓는 데 목재 건축은 약 1년, 기와를 덮는 일은 20여 일로 목재보다 기와 시공이 일찍 끝난다. 그래서 공사를 위한 이동이 잦다.

국내 유일무이한 번와장인 이 선생은 그간 축적해온 전통 번와 기술을 후학들에게 전수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현천동에 전수교육장을 마련해 기와 잇기 등 다양한 기술을 전수하는 데 몰두한다.

“예나 지금이나 번와는 경상도 전라도 등 지역 특색이 묻어나옵니다. 이를 교육하기 위해 시연장을 만들었는데, 시연을 하다 보니 짓고 무너뜨리고 또 짓는 등 여러 번 반복하죠. (연습 삼아 한 건데) 지역 특성상 군사지역에 건물을 무허가로 올렸다는 이유로 벌금 200만 원을 낸 적도 있었습니다.”

이 선생은 전통 기와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이 많아 아쉽다. 전통미와 전통방식은 온데간데없고 현장에서는 체계적이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전통미를 이어가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목조건물이 천 년을 갈 수 있느냐 마느냐는 바로 기와를 덮는 데 달렸다면 제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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