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 임석환 선생

▲ 불화에 색을 입히는 임석환 선생 (사진=박선혜)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불화장 수산(樹山) 임석환(63) 선생이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작은 붓을 정성스레 움직인다. 붓끝에서 표현된 색은 파스텔톤과 같이 은은해 불화 속 관세음보살이 한층 더 온화해 보인다. 이 때문에 원색을 주로 사용하는 불화와 달리 임 선생의 불화는 색감이 곱고 여성적이다.

임 선생을 만나기 위해 문화재청이 주최한 2010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작품전 ‘전통공예 그 아름다움에 미(美)치다’에 마련된 시연장을 찾았다. 평소 그는 불화 그리는 데 정진하고 속세와 연을 끊는 불교에 영향을 받아 매스컴 노출이 적은 편이다.

“기본적으로 불심이 없다면 불화 작업을 할 수 없죠. 불화를 그리는 것 역시 수행의 일환입니다. 작업을 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가다듬고 경전을 보거나 염불을 외운답니다.”

▲ 불화 작업에 필요한 석채(물감에 해당)와 얼굴을 그리는 면상필, 넓고 평편한 평필, 세세한 부분까지 색을 입힐 수 있는 세필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석채는 화록청(초록) 경면(붉은색) 지당(백색) 화엽(진한 초록) 군청(남색) 황(노란색) 등으로 나뉜다. (사진=박선혜) ⓒ천지일보(뉴스천지)

불화에 쓰이는 색은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으로 동(東) 남(南) 중앙(中) 서(西) 북(北)의 방향을 나타낸다. 이를 오방색이라 부른다. 우리네 고유의 오방색은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색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이유로 옛날 스님들이 불화를 작업할 때는 악한 기운이 침투하지 않도록 금(禁)줄을 치고 목탁을 치면서 염불을 외운 후 일을 시작했다.

임 선생은 유년시절 불심이 깊은 어머니를 따라 충청남도 예산군에 위치한 수덕사엘 종종 찾았다. 어린 마음에 절에 있는 단청 문양이 보기 좋아 언젠가는 꼭 그려야겠다고 다짐했단다.

“목수이셨던 아버지께서 제게 나무로 장난감을 종종 만들어 주셨는데 아마 아버지의 손재주를 물려받지 않았나 싶어요.”

단청장이라는 꿈을 키우던 그는 스무 살 되던 해에 서울 진관사의 혜각스님에게 단청을, 경남 하동 쌍계사의 혜암스님에게 불화를 각각 사사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주요 종목인 불화 외에도 단청 작업도 해왔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 임석환 선생 (사진=박선혜) ⓒ천지일보(뉴스천지)
“단청을 배울 때 스님과 같이 사찰에서 생활했습니다. 경전을 읽는 등 스님들의 생활을 그대로 답습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불화는 주로 스님들께서 그리셨거든요. 스님이 되라는 권유도 받았으나 하고 싶은 게 어찌나 많던지 정중히 거절했죠.”

부산 범어사, 서울 진관사, 강화도 전등사,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문수암, 청도 운문사, 양산 통도사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사찰의 단청뿐 아니라 일본 요코하마의 안국사, 하와이 호놀룰루 대원사 등 국내외 사찰에 있는 단청들이 다 그의 손을 거쳤다.

원래 단청장 보유자들이 단청작업을 하면서 겸사겸사 불화를 그려왔다. 하지만 제작목적이나 표현기법 등에서 단청과 많은 차이가 있어 문화재청은 2006년에 임석정 스님과 임석환 선생을 불화장 보유자로 분리·지정했다. 이는 불화장들이 더욱 작업에 자부심을 갖고 매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최근 그는 제자들과 함께 경남 양산에 위치한 통도사 영산전에 봉안된 ‘팔상탱화’를 완성했다. 팔상탱화는 석가모니의 탄생부터 열반까지 일생을 팔상으로 묘사한 기예로 한국을 대표하는 불화로 규모 또한 크다. 작품당 원체 긴 시간을 필요로 해 보통 1~2년이지만, 팔상탱화의 경우 수년 동안 매달려 왔단다. 이는 마치 르네상스시대 미술가 미켈란젤로의 대작 ‘천지창조’를 연상케 한다.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에 임 선생의 불화작업장 겸 전수소가 있다. 여기서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단다. 그는 “젊은 친구들과 같이 하루에 8시간을 꼼짝 앉아 작업한다”면서 “돋보기를 착용했을 뿐 아직 건재하다”며 불화에 대한 애정을 내보였다.

불화는 엎드려서 작업한다. 그만큼 정성을 들인다는 이야기다. 임 선생의 말에 따르면, 불화장들은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일하다 보니 허리가 아프기 일쑤다. 그는 “자칫하면 허리가 휘기도 한다. 일종의 직업병과 같다”고 말했다.

불화장은 불화를 작업하려고 앉으면 도통 일어날 생각이 없다. 불화 자체가 선이 고르고 길게, 그리고 아주 가늘고 섬세하게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고도의 집중력이 장시간 필요하다.

50여 년 동안 불교의 삼라만상을 그려온 임 선생 역시 초기에는 습화(習畵)를 부단히 했단다. 그리고 또 그리다 보니 자신만의 색을 찾았다. 원색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부드러운 오방색을 구현해 낸 것이다.

▲ 임석환 선생의 제자인 전수교육조교 이경아 씨 작품인 ‘기룡관음탱화’ (사진=박선혜) ⓒ천지일보(뉴스천지)
“시대마다 불화 특징이 다릅니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엔 화려한 불화였고, 조선시대엔 원색을 많이 이용했죠. 또 시대뿐 아니라 지역별로 불화 특징이 있습니다. 다만, ‘32상 80종호’라는 기준을 지켜야 해요.”

‘32상 80종호’는 부처나 보살상을 그릴 때 지켜야 하는 수칙으로 ‘이가 가지런한 모습’ ‘몸이 금색으로 된 모습’ ‘넓고 둥근 얼굴’ ‘눈썹이 초승달 같고 짙푸른 유리색’ ‘덕스러운 손발’ 등이 있다.

그는 불화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한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인자한 부처나 관세음보살 등을 보며 심신 안정을 꾀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저라고 왜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자신과 늘 싸운 걸요. ‘인내’하다 보니 지금까지 이어 올 수 있었네요. 하지만 요즘 친구들 보면 일단 바닥에 앉는 것조차 힘들어 합니다. 그리고 중도 포기를 많이 하죠. 그런 모습 보면 안타까울 뿐이죠.”

임 선생은 마음을 비우고 되든지 되지 않든지 꾸준히 하는 것 외엔 방도가 없다고 당부한다. 자신도 그리했단다. 불화 작업은 여러 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인내에 인내를 더해야 한다.

“초안 작업 과정만 3번이 있죠. 작업은 총 5단계로 초안, 배첩, 초안, 색 입히기, 초안이 있습니다. 작업만 하더라도 인내를 배우죠.”

어느새 불화 속의 관세음보살의 온화한 미소와 닮은 임 선생. 앞으로 불화를 그리는 사람으로 더욱 열심히 많은 작품을 남기고 불화를 그리는 젊은이들을 양성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아울러 여태껏 사찰의 주문을 주로 받아 작업했으나 기회가 닿으면 소장 작품도 그리고 싶단다.

후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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