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용인의 한적한 마을의 영산공방에서 만난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박명배(61) 씨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남다른 자부심으로 이어온 소목의 길을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전통문화 계승에 힘쓰고자 후학 양성위한 길 16년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지난 4월 문화재청은 보유자 충원을 하기 위해 시·도에서 추천을 받은 소목장 20명 중 최종 8명을 선정했다. 공방을 직접 방문하고 조사ㆍ심의를 거친 끝에, 박명배 선생 1명만 보유자로 인정됐다.

경기도 용인의 공기 좋고 한적한 마을 길가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보유자 박명배 선생의 영산공방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남다른 자부심으로 40년 넘게 소목장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장인 박명배(61) 선생을 만났다.

나무를 다뤄 가구·기구 등 만드는 목수

목수란 나무를 다뤄 목재 가구나 문방구 등을 제작하는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목공 또는 목장이라 부르는데 이들은 건축이나 공정을 다루는 대목장과 조각과 일반가구를 전문으로 하는 소목장으로 나뉜다.

박 선생은 “소목장이란 용어는 고려시대부터 <고려사> 등 문헌에 나오는데 작을 ‘소(小)’에 나무 ‘목(木)’을 쓴다”며 “대목장은 집을 짓는 것이라고 하면 소목장은 그 안에 세간살이를 만드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목장이 하는 일은 가구제작, 창호·문 짜기, 농기구 재기 방적기구 등 제작 폭이 넓다. 그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을 소목, 그 기술을 인정받아 보유자로 승격된 사람을 소목장이라고 하며 무형문화재로는 75년부터 지정됐다.

소목장의 길에 들어서다

박 선생은 처음부터 소목일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현대공예를 공부했다. 그가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인척 중 소목일에 종사하는 분의 추천으로 서라벌 예술대 공예과 교수인 최회권 선생의 공예미술연구소(아뜰리에)에 취직을 하면서부터다.

최 선생이 학교에 강의하러 가면 공방에서 여러 명이 목공작업을 했는데 당시 박 선생이 제일 막내였다고 한다. 박 선생은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적성에 맞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이러한 것은 소질이 있다는 것으로 여겨졌다”며 소목장의 길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계기를 소개했다.

박 선생은 1971년에 최 교수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자 다른 전통 소목장 선생을 만나 일을 배우고 1981년 독립해 개인 공방을 차렸다.

그는 “나무를 깎고 다듬고 목침을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던 어느 날 이 기술을 배워서 무엇에 쓸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옛날에는 도외시 됐던 전통문화들이 요즘에는 많은 부분에서 재의식ㆍ재평가되고 있다”며 “장인들이 차차 대우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사회 전반적으로 조성이 돼 가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명품 재료에서 명품이 나온다”

박 선생의 연구실 겸 작업실에는 그동안 그가 제작하고 전시한 작품들 사진이 병품처럼 걸려 있다. 그는 “인생에 도움 주신 분들 중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최 관장의 도움으로 청와대 영부인실ㆍ운현궁 등 내노라 하는 곳에 그의 작품들이 있게 됐다.

그는 2년동안 열린 한국전통공예유럽순회전시를 계기로 LA한국문화원, 로마교황청박물관, 워싱턴한국문화원, 베를린한국문화원 등에 있는 전통가구도 다 만들었다고 한다.

박 선생은 “명품 재료에서 명품이 나온다”며 “좋은 재료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기 마련인데 요즘에는 좋은 나무 구하기가 쉽지 않아 가구 제작에 어려움이 많다”고 아쉬워 했다.

전통가구를 만들 때는 산에 있는 소나무가 아니고 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나무 느티나무 등 300~500년간 자란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그는 “가구는 재료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산에 있는 나무는 보호로 지정돼 벨 수 도 없다”며 재료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내비췄다. 이어서 그는 “순수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있는 좋은 (나무) 재료는 귀하지만 귀한 재료인 만큼 귀한 작품이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자인ㆍ소재ㆍ기능의 조합체

나무는 수백 년을 거쳐 자라기 때문에 무늬(선)가 다양하다. 그는 “다양한 무늬 속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문양이 숨어있다”며 “좋은 무늬를 가진 나무는 흔하지 않다. 좋은 무늬를 가진 하나의 나무로는 하나의 작품만 제작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구를 탄생시키기 위해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고 덧붙였다.

나무는 습도에 민감하다. 여름은 습하고 더워 나무가 늘어나고 겨울에는 춥고 건조해 수축된다. 목재의 섬유질은 스폰지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는데 특히 나무가 늘리는 힘은 대단하다고 한다.

“나무가 늘려주는 성질이 강하니 큰판을 넓게 쓰기보다는 작게 쪼개서 면 분할을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우리 고유의 비례미가 있는데 면 분할과 비례를 통해 짜임새있게 갖춰진 가구를 만들게 되죠.”

서양에는 황금비율이 1:1.618 이듯 우리나라에는 구고연이란 3:5의 비율이 있다. 3:5를 서양방식으로 나뉘면 1:1.666이므로 서양의 황금비율과 비슷하다.

이렇게 짜임새를 갖춘 디자인이 구상되면 좋은 소재를 사용해 기능을 발휘한다. 우리나라 전통가구는 ‘목리’ 즉 나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잘 살려야 하며 우리나라 기후 특성에 맞는 제작 양식을 사용한다.

목가구는 의복, 서책 등을 보관ㆍ수납하는 기능도 가지면서 조선조 사대부의 정신세계까지 담기 때문에 나무를 가지고 목가구를 만들 때는 나무와 목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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