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초선을 잊지 못해 승상부 홍예문으로 다시 들어간 여포는 초선을 바라만 보다가 동탁의 질투에 쫓겨나버렸다. 달포째 정사를 돌보지 않고 초선의 색을 고혹하던 동탁은 그만 병이나 자리에 누웠다. 문안을 간 여포는 동탁이 잠들어 있자 초선의 손을 잡으려다가 발각돼 쫓겨났다. 쫓겨난 그는 길에서 모사 이유를 만났다. 이유는 여포를 달래서 승상부로 들어간 뒤에 시각을 지체 않고 급히 내실로 들어가 조용히 동탁에게 뵙기를 청했다. 동탁은 좌우 시자를 물리치고 이유를 맞이했다.

이유는 정색을 하고 동탁에게 간했다. “태사께서 천하를 차지하시려 하면서 적은 허물을 가지고 여포를 반하시니 만약에 그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면 천하 대사는 다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이유의 그 말에 동탁은 불안했다. “어찌했으면 좋겠나?”

“내일 아침에 다시 불러들여서 황금과 비단을 내리면서 좋은 말씀으로 달래십시오. 그리하시면 자연히 무사하리다.”

동탁은 이튿날 이유의 말대로 사람을 시켜서 여포를 부르게 한 뒤에 당에 오르게 해서 좋은 얼굴로 말을 꺼냈다. “내가 어제는 너무 과했다. 병중에 심신이 피곤해 잘못 말을 하여 네 마음을 상하게 했으니 너는 이 일을 마음에 두어 괘념하지 말거라.”

동탁은 시자에게 영을 내렸다. “온후(여포의 작위)에게 황금 열 근과 비단 스무 필을 내려라.”

여포는 동탁이 내린 황금과 비단을 받아 인사를 치른 뒤에 물러나왔다. 그 뒤 여포는 승상부에 여전히 머물면서 계속 동탁의 호위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몸은 비록 동탁의 좌우에 시립해 있으나 마음은 항상 초선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동탁은 그럭저럭 병세가 호전됐다. 그는 대궐로 들어가 조정 일을 보았다. 여포는 창을 잡고 동탁을 따라다니며 호위를 했다.

하루는 동탁이 대궐로 들어가 황제를 뵈옵고 나라 일을 아뢰고 있었다. 여포는 초선의 생각이 간절하게 일었다. 그 틈을 타서 초선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라도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는 창을 끌고 대궐 문을 벗어나 승상부로 말을 내달렸다.

여포는 승상부 앞에 말을 매어 놓고 창을 끌고 후원 별당으로 들어가서 초선을 만났다. 때마침 초선은 혼자 있었다. 초선은 여포를 보자 미소를 지었다. 여포는 혼이 빠진 듯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천하의 장군도 수줍어서 말이 얼른 나오지 않았다.

“어째 오셨습니까?” 초선은 옥 같은 이를 드러내며 부끄러운 듯 살며시 미소를 띠었다. 오늘은 옆에 동탁이 없으니 울지도 않았다.

“네가 보고파서!” 여포는 한 손에 창을 잡은 채 한 손으로는 초선의 턱을 괴어 잡고 아름다운 얼굴을 집어 삼킬 듯이 쏘아보았다.

“이곳은 이목이 번다합니다. 저기 깊숙한 후원 봉의정으로 가서 잠깐 기다리십시오. 내 곧 가오리다.”

초선은 여포를 향해 그믐달 같은 고운 눈웃음을 뿜었다. 여포는 미칠 듯이 좋았다. 신명이 났다. 창을 잡고 나뭇가지를 헤치며 나는 듯이 후원 속 봉의정으로 내달렸다. 그는 정자 앞에 당도하자 굽은 난간에 의지해서 초선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아름다운 산새가 풀쩍 날았다. 맑은 개울물이 졸졸 흘렀다. 그러나 모두가 초선이만 같지 못했다.

여포가 얼마간 난간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을 때 멀리에서 초선이 나타났다. 천자만홍 흐드러지게 핀 붉은 꽃 푸른 버들을 헤치고 봉의정으로 다가왔다. 꽃 속에 나타나는 미인은 더 한층 아름다웠다. 월궁의 항아 같고 요지(瑤池)의 선녀 같았다.

다가온 초선은 여포의 품에 왈칵 안겼다.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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