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이유가 동탁에게 초나라 장왕의 예를 들며 애첩에게 연연하지 말고 초선을 여포에게 보내라고 했다. 동탁은 생각해 보겠다며 이유를 보낸 뒤 초선에게 여포한테 가라고 하자 초선은 차라리 자결을 하겠다며 칼을 빼어들었다. 동탁은 장난이라며 초선을 겨우 달랬다. 이튿날 이유가 찾아와 일진이 좋으니 또 초선을 보내라고 했다.

동탁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시치미를 뗐다.

“나와 여포는 부자지간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가 데리고 있던 계집을 여포한테 줄 수는 없다. 네가 말을 잘 해서 초선이를 희롱한 죄를 불문에 붙인다 하고 내 뜻을 전해서 잘 위로해 두는 것이 좋겠다.”

동탁의 마음은 아주 딴판으로 변했다.

“대감, 대감께서는 초선이한테 너무 고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유는 불쾌하게 말했다. 동탁의 얼굴이 대번 붉게 변했다.

“그럼 너는 네 애첩을 여포한테 주겠느냐? 초선의 일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개구를 말아라. 말을 하는 날에는 네 목을 베고 말겠다.”

그 말을 듣자 이유는 기가 막혔다. 승상부 대문 앞으로 나와서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을 했다.

“우리 모두가 여자 하나로 인해 죽겠구나.”

그러나 백 번을 탄식해도 소용이 없었다. 초선한테 이미 빠질 대로 빠져버린 동탁은 당일로 영을 내려 미오 별장으로 들어갔다. 만조백관들은 전송을 하러 동문 밖까지 나갔다.

초선이 수레 위에서 멀리 바라보니 여포가 백차일 치듯 한 백관 반열 속에서 뚫어지도록 초선이 탄 수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초선은 여포와 먼빛이나마 눈이 마주치자 수건으로 낯을 가리고 아프게 우는 시늉을 했다. 여포의 창자는 천백번 엉클어져 새끼마냥 비비 꼬여졌다. 쓰라리다 못해 아팠다.

여포는 쥐어짜지는 단장의 슬픔을 안고 수레 위의 초선을 넋을 잃은 채 바라보았다. 수레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여포는 말을 몰아 언덕 위로 올랐다. 멀리 떠나는 수레를 바라보며 한숨만 쉬었다. 그때 뒤에서 누가 어깨를 치며 말을 걸었다.

“온후는 왜 태사를 모시고 가지 않고 여기서 바라만 보고 탄식을 하고 계시오?”

여포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다른 사람이 아니라 사도 왕윤이었다.

“노부는 그동안 몸이 불편해서 폐문 불출하고 있는 까닭에 오랫동안 장군을 만나지 못했소이다. 오늘 태사께서 미오 별장으로 떠나신다기에 병을 무릅쓰고 억지로 나왔던 길인데 이제 장군을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소. 장군은 왜 여기서 탄식만 하고 계시오?”

그 말에 여포는 힘없이 대답했다.

“모두가 당신의 딸 때문이오.”

여포의 말에 왕윤은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아, 여태껏 초선을 장군한테로 보내지 않았단 말이오?”

“늙은 도적놈이 데리고 떠나 버렸소.”

왕윤은 더욱 놀라는 시늉을 하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인두겁을 쓰고 어쩌면 그럴 수가 있단 말이오? 도저히 못 믿을 소리야.”

여포는 그동안 일어났던 자초지종을 하소연하기 시작하자 왕윤은 그 말을 듣다가 하늘을 쳐다보고 탄식하며 발이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그는 어처구니가 없고 입이 굳어서 한동안 말을 못하겠다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 왕윤은 여포의 손을 덥석 잡았다.

“태사가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 따위 짐승 같은 짓을 한단 말이오. 장군, 우리 집으로 갑시다. 그곳에서 말씀을 좀 나누어야겠소.”

여포는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왕윤의 뒤를 따랐다. 왕윤은 집으로 들어가자 밀실로 여포를 맞아들여서 술상을 차리고 관대를 했다.

여포는 봉의정에서 동탁과 마주치던 일을 자세히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왕윤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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