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동탁은 쫓겨난 여포를 불러들여 황금과 비단을 내리고 계속 승상부 출입을 허락하고 자신의 호위를 맡겼다. 어느 날 동탁이 대궐로 들어가 황제에게 조정 일을 아뢰는 동안 여포는 초선이 보고 싶어 봉의정으로 내달렸다. 그곳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 포옹을 했다. 초선은 눈물을 흘리며 여포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소녀는 비록 왕 사도의 친딸은 아니올시다마는 사도께서는 기출(己出) 같이 사랑하고 대접해 주셨습니다. 한번 장군께 소녀를 맡기신 이후, 소녀는 평생 소원을 이루었다 하여 기뻐했더니 뜻밖에 동 태사는 저의 몸을 더럽혔습니다. 소녀는 곧 죽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껏 제 목숨이 보존해 있는 것은 한번이라도 장군을 뵈옵고 기막힌 이 사정을 말씀 드린 후에 죽으려 한 것입니다. 이제 다행히 장군을 뵈었으니 첩의 소원은 끝났습니다. 이 몸은 이미 더러운 몸이라 다시는 영웅을 섬길 도리가 없습니다. 오늘 장군님 앞에 죽어서 첩의 뜻을 밝히려 합니다.”

초선은 울음 반 말 반 여포를 향해 자기 뜻을 밝히고 난간에 손을 잡고 급히 정자 아래 연못으로 뛰어 내리려 했다. 여포는 황급히 초선을 껴안고 울면서 말했다. “나도 네 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헛되이 죽어서는 안 된다.”

초선은 손으로 여포를 떠밀었다. “이승에서는 장군의 아내가 될 수 없습니다. 죽어서 내세에서 서로 만나기로 하십시다.”

“내가 이승에서 너를 아내로 삼지 못한다면 결코 영웅이라고 할 수 없다!”

그 말에 초선은 여포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루가 백 년같이 지루합니다. 소첩을 불쌍하게 생각하신다면 한 시 바삐 구해 주십시오.”

“아무렴, 구해 주고말고! 그러나 오늘은 아니 되겠다. 지금 동탁이 황제와 정사를 나누고 있는 틈을 타 온 것이니 오래 지체하면 늙은 것이 눈치를 채서 의심을 할 것이니 오늘 만은 속히 가야 한다.”

초선은 섬섬옥수로 여포의 옷자락을 휘어잡으며 훌쩍훌쩍 울었다.

“장군께서 동 태사를 두려워하신다면 첩의 몸은 다시는 천일을 우러러 볼 수가 없겠습니다.” “나한테 맡겨라. 내가 서서히 좋은 계책을 생각해 낼 테니.”

여포는 초선을 달랜 뒤 창을 잡고 일어섰다. 초선은 원망하는 눈초리로 여포를 잠깐 흘겨보며 말했다.

“소녀가 깊은 규중에 들어 있을 때 장군은 천하의 영웅이라 들었는데, 당세의 첫손을 꼽는 영웅이 남의 절제를 받는다니 말이 됩니까? 가엾은 일이옵니다.” 초선은 말을 마치자 눈물을 비 오듯 쏟았다. 여포의 얼굴은 활활 달았다. 부끄러울 뿐만 아니었다. 초선의 우는 모습을 보자 일촌 간장이 녹아 흐르는 것 같았다. 차마 떨치고 갈 수가 없었다. 여포는 창을 들고 우두커니 초선을 바라보다가 초선을 바싹 껴안았다. 초선의 고운 뺨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여포는 초선의 뺨에 자기 얼굴을 대면서 울지 말라고 달래었다. 초선의 향루(香淚)가 여포의 얼굴로 흘러들었다. 처량한 초선의 향기로운 눈물은 더욱 여포의 창자를 끊어지듯 아리게 했다.

“울지 않으면 어찌 하겠소. 몸은 이미 동 태사의 제물이 됐고, 사랑하는 사람은 앞에 있어도 소용이 없고!.” 초선은 여포의 목을 얼싸 안았다. 여포와 초선은 한몸이 되어 껴안은 채 차마 떨어지지 못했다.

그즈음 황제와 정사를 논하던 동탁이 전각 아래를 굽어보니 여포가 보이지 않았다. 동탁은 급히 황제에게 퇴궐하는 인사를 한 뒤에 다급하게 수레를 몰아 승상부로 돌아갔다. 동탁은 문 앞에 당도하니 여포의 명마 적토마가 매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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